듣다
#열린책들 #하다앤솔러지 #듣다
듣다는 듣는 것을 주제로 한 다섯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송> 김엄지
<하루치의 말> 김혜진
<나의 살던 고향은> 백온유
<폭음이 들려오면> 서이제
<전래되지 않은 동화> 최제훈
최애 작품을 말하자면 <나의 살던 고향은> 이다. 어머니의 의견은 듣지 않는 아버지, 딸의 말에는 귀를 막은 채 아버지의 의견에만 중요하게 듣는 어머니, 내면의 소리를 밀어내다가 점점 듣게 되는 '딸'의 이야기다. 꽉 막힌 시골 생활을 한 번이라도 해봤다면 누구나 진저리 치면서도 이 이야기를 읽게 된다. 아니, 듣게 된다.
생각해보면 듣는다는 행위는 말하는 것 보다 더 힘든 일이다. 말하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면 끝이지만, 듣는다는 것은 내 취향과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하니까.
여유가 없으면 듣는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사랑이 없으면, 애정이 없으면 듣는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애실아, 여기 있으면 제일 좋은 게 뭔지 아니?"
"조용하다는 거야. 원하는 만큼 조용하게 있을 수 있다는 거. 아무 이야기도 안 들어도 된다는 거."
『하루치의 말』 의 현서도 그랬다. 현서는 애실의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쏟아낸 말들을 흘렸을 뿐, 정말로 듣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나는 내 이야기를 사랑해서 들어주는 사람과, 목적하는 바가 있어서 들어주는 사람을 구분할 수 있는가를 생각했다. 내 대답은 '없다' 였다.
그래서 애실이 더욱 안타까웠다. 애실은 상대방이 그녀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듣는다고 생각했을 거다. 하지만 아니었다. 아마 애실은 평생을 누가 들어준다고 하더라도 의심하다가 상대가 떠나면 비로소 그게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랑이 꼭 듣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폭음이 들려오면> 의 가출한 조카를 돌보는 삼촌 이야기가 그러한 이야기였다. 심적 여유가 없는 사람 둘이 부딪히면 어떻게 되는지 이 작품 속 주인공의 누나와 조카를 통해서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상대의 말은 듣지 않으면서, 상대의 말을 그대로 전달해주는 타인의 말을 듣는다는 것은. 사랑은 가장 큰 귀가 되어 들어주기도 하지만, 가끔은 가장 작은 귀가 되어 그것마저 틀어막기도 한다.
우리는 가끔 듣기의 무게를 간과한다. <듣다> 를 읽으면서 나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의 소중함과 듣는 사람을 배려하는 말하기의 중요성을 다시 깨달았다. 아무렇게나 옹알거린다고 엄마가 다 들어주던 시기는 지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