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물을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쫄보라서 영화나 책을 아예 못보는 것도 아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마지막에 찾아내는 재미로 공포추리소설이나 추리가 섞인 영화는 즐겁게 보는 편이다. 몇 살 때인지 정확히 생각이 나지는 않는데 사회인이 되고 나서였나. 소개팅으로 만난 남자랑 뜬금없이 영화를 보러갔었다. 우리집 근처 전자랜드 시네마에서 봤던것 같은데. 그게 바로 '주온'이란 영화였다. 일본 호러에 대한 호불호도 없던 아예 관련 지식도 없던 시기에 본 게 하필 일본 호러중에서도 가장 으뜸으로 꼽히는 '주온'이었던 것이다. 영화 속에서 머리를 감는 인물이 머리를 감다가 마주친 귀신과의 만남이 몸서리치게 잔상으로 남았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달의 책. 남예은 작가님의 '굿나잇 헤어살롱'을 읽으면서도 이 장면이 자꾸 떠올라 자꾸만 뒤를 확인하게 되었다.
시작은 경쾌하고 즐거운 분위기로 오래된 다마스 봉고를 타고 빙의된 소녀를 구출하러 가는 굿나잇 헤어살롱 멤버들의 모습에서 출발한다. 여느때와 같이 악귀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고통을 해결해주고자 3인방의 헤어스타일리스트는 자신만의 무기를 들고 현장으로 직접 출장 서비스를 시행한다. 샴푸와 두피 스케일링 담당인 매화, 트리트먼트, 파마 담당 홍해, 마지막으로 대미를 장식하는 커트 담당은 성공이다. 이 세사람의 헤어스타일리스트는 악귀에 사로잡혀 고통속에 놓인 사람들의 영혼을 구출한다. 그들이 가져온 신비한 약제가 닿자 악귀는 피부 속에서 덩어리져 온몸을 타고 다니다가 머리 카락에 갇혀 퇴귀 가위에 의해 잘려나가게 되면서 악귀 퇴치 의식이 진행되는 것이다. 하지만 동방고에 퍼진 악령은 쉽사리 퇴치가 되지 않고 언니의 죽음 이후 악귀가 들린 의뢰인 보미를 구하려다 설상가상 매화의 영혼까지 악귀에게 빼앗기고 만다.
매화가 행방불명되고 시간은 흘러 변함없이 퇴귀커트, 천도파마, 해탈집중관리 시술을 하며 악령에 시달리는 사람을 구출하던 일상이 계속된다. 그리고 어느날 꾸미의 꿈 속에서 악귀에 또다시 점령당한 보미의 영혼이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성공과 홍해는 잃어버린 매화를 찾아야한다는 결심을 잊어버린 적이 없던 차, 보미에게 매화의 존재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고자 병실에 입원 중인 보미를 찾기로 한다. 천 년에 한 번 나온다는 절대 양기를 지닌 성공과 그 기운이 물과 만나 치명적 내상을 입을 수 있는 위험 속에서 유일한 탈출구가 되어줄 가능성을 지닌 홍해는 보미가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임을 알게 되곧 퇴귀 작업에 몰두한다.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쉽사리 퇴귀는 이루어지지 않고 홍해는 잊고 있던 과거의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된다. 홍해는 본래 불가사리로 동방고를 비롯한 여러 고등학교에서 일어나는 비극의 원인이 되는 강차라는 악귀의 딸이다. 불가사리는 본래 세상이 어지러울 때 평화를 가져다 주는 선한 영물이었지만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배신을 경험하며 비극이 시작된다. 정화와 불사의 능력이 있는 불가사리였지만 악귀에 잠식당하며 비극의 역사는 계속되어온 것이다.
성공과 홍해는 매화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긴장감을 안고 소설에 흠뻑 빠져들었다. 결말은 모두가 읽어보시길 바라며.
판타지 장르가 그렇듯 읽는 내내 머릿 속에서는 나만의 캐스팅으로 인물들의 모습이 매순간 생동감이 넘쳤다. 요즘에는 볼만한 청소년 드라마가 없는데 드라마 소재로도 딱 어울릴 것 같았다. 청소년이 주인공이어도 잔인하고 피범벅이 되는 그런 이야기 말고 적당히 환상적이면서 또 적당히 긴장감이 흐르는 요소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악령이 정말 존재할까에 대해서는 사실 의문인 대문자 T지만, 인간이 자기 삶을 억울하게 끝내야만 했을 때 정말 귀신이 되어서라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싶겠다는 것에 동의는 된다. 아름다운 가을날 재미의 세계로 푹 빠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