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읽기가 유행처럼 국어선생님들의 단톡방에서 단골 소재가 되면서 한학기 한권읽기 활동이나 수행평가에서도 자주 읽게 되었다. 소설을 읽고 늘 독후활동으로 나온 질문은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나 인공지능이 인간이 될 수 없는 이유같은 것이었는데 학생들의 답변은 인간만이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그게 3-4년 전쯤 토의에서 나온 의견들이었으니 2026년 현재와도 많이 동떨어진 생각일 것 같기도 하다. 지금 아이들에게 gpt나 제미나이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은 감정을 지닌 인간처럼 상담도 해주고 위로도 해주며 때론 내가 혼자 결정하기 힘든 문제에 명쾌한 답변을 주기도 하니 말이다. 그나마 인간의 형상을 한 인공지능의 모습이 아직까진 인위적이고 이질감이 드는 정도랄까. 더이상 감정이 인간만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찜찜함이 남는 것도 사실이 되어버렸다.
이새벽 작가의 소설 <물에 발을 담근 채>속에서는 곧 다가올 가까운 미래의 모습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현실감이 드는 상황이 제시되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던 주인공 '나'의 신경을 쓰이게 만든 성빈이는 여러 모로 매력적인 친구이다. 그다지 인기는 없지만 도자기 수업을 두 사람이 신청하게 되면서 우정을 쌓게 된다. 한 학기 수업이 지나고 어느날 공방을 정리해달라는 선생님의 부탁으로 '나'와 성빈은 빗소리를 들으며 공방 정리를 시작한다. 그리고 '나'는 마음에 두고만 있던 그 말을 내뱉고 만다. "나 너 좋아해. 친구로서가 아니라."
엄청난 고백이 있고난 후 어떤 반응이 있을까 싶던 찰나, 성빈은 감정의 동요없이 '나'를 불러 물그릇에 손을 담가보라는 제안을 한다. 물그릇에서 손을 꺼내 자신의 손을 보라고 하는 성빈은 담담하게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자신은 안드로이드라는 사실을. 교실밖에서 문득 이 말을 엿들은 듯한 인기척이 들리고 '나'는 혼란스러움에 빗속으로 뛰쳐나가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손을 들여다보니 물에 젖어 쪼글쪼글한 손이 눈에 띈다. 성빈의 손은 도자기처럼 매끈했던 것과 비교되게.
초등학교시절 친구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따돌림을 당했던 '나'는 유일하게 말을 걸어주는 소영이란 친구를 믿고 의지했었다. 하지만 졸업때에 되어서야 그 따돌림의 원인이 소영이었고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나'에게 호의를 베풀었단 사실에 그 누구에도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간신히 마음을 열게 된 친구가 성빈이었건만. 성빈이가 감정을 학습중인 안드로이드라니..
안드로이드에게 사랑을 고백한 연예인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조롱을 받는 세상이었다. 그런데 안드로이드에게 사랑을 고백하다니.. 소문이 퍼진다면 또다시 악몽이 재현될 가능성이 컸다. 아이들 사이에 안드로이드가 있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고 친구들은 성빈을 지목하여 사실을 물었다. 제발 거짓말이라도 해주길바라는 '나'의 소망과 달리 성빈은 자신의 정체를 밝힌다. 그리고 성빈은 학교에서 사라지게 된다. 가상공간 상에서 아바타들과 적당한 거리감으로 자신을 감추기도 하며 맺어도 그만인 관계 맺기에 열을 올리던 순간 '나'는 잊고 지냈다고 생각했던 성빈을 만나게 된다. 성빈은 자신이 느낀 감정을 조용히 일러주며 마치 인간처럼 자신이 느낀 서운함과 친구들에게 갚아 주고 싶은 마음들을 늘어놓는다.
감정의 영역이 학습가능한 것일까에 대해 대체로 회의적인 답변을 내놓았던 아이들의 생각과 아주 다른 작품 속 안드로이드의 모습은 실로 놀라웠다. 하지만 데이터를 기반으로 학습을 하는 인공지능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지않을까 싶은 설득력이 점점 생겼다. 이미 인간의 형상이 아닌 고작 어플상의 문자 대화로도 충분히 위로받고 고민을 해결하는 세상이니 말이다. 안드로이드를 학교 안에 있는 소수자로 대치시켜 상상도 해보았다. 이제는 더이상 낯설지 않지만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나 성 소수자라던가 무엇이든 우리가 정상범주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벗어난 친구들이라면 충분히 느낄 수 있는 감정을 성빈도 느끼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을 해보니 공감이 되었다. 물론 마지막 장면처럼 누구나 복수를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짧지만 한 방이 있는 이야기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또다른 SF 토론 수업의 주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품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