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시작도 어김없이 책이다. 이미 3월이 한참 지났지만 학교는 3월2일부터 시작이니 나에겐 지금이 출발선과 같은 지점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출발선을 가지고 있다. 그주에서도 가장 특별한 순간을 꼽으라고 한다면 새학교에서 3월을 맞이하는 일 아닐까. 내신과 수행평가, 단 하나의 실수도 용납되지않는 고등학교에 비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가도 되지만 초등학교와 달리 교복이라는 다른 옷을 입고 십대의 한복판을 걸어야하는 14살의 순간도 잊지못할 긴장의 연속일 것이다. 긴 초등학교 6년을 마치고 제법 청소년의 폼을 잡으며 입학하는 나이. 김혜정 작가의 말에 따르면 30 여권의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14 살 이야기를 빼놓아 쓰게 되었다는 《이 망할 열 네살》은 마치 잘 찍은 브이로그마냥 중딩의 일상을 세밀하게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하민이는 초등학교 어린이 회장 출신의 mbti가 모두 대문자 E로 표현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핵인싸 친구다. 부모님의 사정으로 새로운 동네로 이사가게 되었고 정든 초등학교 친구들이 하나도 없는 낯선 동네에서 중학교 입학을 하게 된다. 사회성 하나는 끝내주었던 인싸의 삶이 무색하게 친구사귀기도 대실패, 반장선거도 대실패, 새학교에서의 3월은 잔인하기만 하다.
설상가상 하민이네 반의 여왕벌 격의 주은빈에게 찍힌 하민은 아버지를 닮아 작은 키 때문에 놀람을 받게되고 성장주사를 맞게 해달라고 짜증을 부리다 가족과 갈등을 겪게된다. 다른 사람의 시선보다는 자존감을 높이는게 중요하다는 아버지의 위로가 오히려 분노를 더 키우게 되고 하민이는 소리를 버럭지르며 원망의 말을 쏟아붓는다.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마.어떻게 남들 신경을 안써? 세상 나 혼자 살아? 남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잖아!
이 망할 열 네살 91쪽 중
어른들의 무책임한 위로가 통하지 않는 순간이 온 것이다. 우리의 삶은 서로 다른 존재들이 매 순간 비교하고 당하며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일부러 모른 척 하며 버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걸 어른의 입으로 말해버리면 세상의 추함을 앞장서 알려주는 것 같아서 감추는 걸까? 어른들은 너무 쉽게 남들과 비교허지말라고 한다.
하민이의 쉽지않은 중학생 적응기에 드디어 한 줄기 햇살같은 존재가 찾아온다. 매일 두꺼운 기차도감을 읽고 있는 선우진. 우진이가 이름인 줄 알았던 하민이에게 자신의 이름이 진이라고 알려주며 손을 내밀어준다. 둘은 선택 수업도 험께 들으며 점점 가까운 사이로 발전하고 서로의 속마음을 수줍게 내놓기도 하며 거리를 좁혀간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여왕벌 주은빈의 몰락이다. 꼬인 가정사로 인해 한 순간 거짓말쟁이에 사기꾼이 되어버린 은빈은 급식도 혼자 먹는 처지가 되어버린다. 환경과 재활용에 대한 주제선택 수업에서 만난 세 친구는 같은 반이라 함께 프로젝트를 하게된다.주말 오후에 세 친구는 공원에 쓰레기를 줍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각자 모은 쓰레기의 종류를 분석하고 어느 위치에 특히 쓰레기가 많은 지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보기로 한다.
그리고 늘 더러운 곳은 계속 더러운 채 빙치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쓰레기를 버릴 휴지통이 부족함을 원인으로 찾아내고 해결방법을 논의한다. 그 과정에서 은빈은 "깨진 유리창"이론을 근거로 제시하며 이미 더럽혀진 곳을 더럽히는 것에 사람들은 죄책감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한다.
문득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것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 사람을 함부로 대해도 된다고 여긴다.
이망할 열 네살 143쪽 중
나를 사랑해 줄 수 있는 존재 중 제일 중요한 존재는 바로 자신이라는 당연한 진리가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엄마로 딸로 살아가면서 나보다 다른 가족이나 사람들을 우선 순위에 두고 속으로만 울음을 삼켰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하민이의 열 네살은 이제 괜찮아졌다.여전히 급식은 진이랑 둘이 먹겠지만 그래도 상관없을 것이다. 처음엔 낯설던 공간도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듯이 우리 삶은 또 금방 익숙해지니 말이다.
새학기 출발의 불안이 나를 엄습한다면 꼭 읽어보라고 추천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