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와 제로의 젊음을 응원하며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이 인기 있던 시절이 있었다. 청춘에게 유독 가혹한 한국 사회에서 이 말은 잔인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귀한 왕자님 공주님으로 성장하다 즐거운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행 학습에 내몰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에 해야 할 고민이나 고뇌의 시간은 싸그리 입시라는 틀 안에 갇혀버리고 마는 현실. 그 틀 안에 끼지 못하는 청소년은 또 그것대로 괴로운 현실과 맞서야한다.
동호와 제로는 도서관으로 짐작되는 낯선 공간에서 깨어나고 타인에게 보이지도 않는 존재로 도서관 이곳 저곳을 배회하며 누군가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소설은 출발한다. 이들이 사후세계에 있는 것처럼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서로를 발견하기 이전까지 도서관에서 떠돌게 된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검은 망토의 사서. 사서는 각자에게 책을 들려주며 답을 찾고 싶다면 책을 다 읽으라는 미스터리한 말을 하며 떠나간다. 그리고 시작된 동호와 제로의 이야기.
동호는 운동을 좋아하고 공부에는 심드렁한 여느 남학생과 다름없는 고등학생으로 우연히 독서실에서 만난 이수라는 친구와의 깊어지는 관계에 혼란을 겪는다. 제로 역시 엄마와의 관계가 그다지 좋지 않은 사춘기 소녀로 그림만이 위로가 되어주는 상황에 만난 밴쿠버라는 친구와의 관계를 통해 성장해간다.
학창 시절의 우정은 TPO의 영향을 더욱 강하게 받는 듯하다.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 만나는 지에 따라 그들의 우정은 순식간에 빠져들게도 만들고 손절하게도 만드는 것 같다. 동호와 제로 역시 비슷한 상황을 겪으며 기쁨을 느끼기도 하고 좌절감에 허우적대기도 한다. 인생이란 긴 시간 속에서 작은 부분일 수도 있는 사춘기 시절의 만남과 이별은 자고 일어나면 한 뼘씩 커있는 키처럼 마음의 키를 늘려준다.
“널 좋아해, 그냥 나는 너란 사람을 좋아하는 거야.” (97쪽 중)
이수는 동호에게 자신의 감추는 것이 어쩌면 더 좋았을 마음을 고백하며 이 우정의 끝을 생각했을지 궁금해졌다. 운동만 좋아하고 누구에게도 깊은 속 마음을 드러내지 않는 동호에게 오랜만에 마음을 열게 한 이수의 고백은 낯설고도 어색한 관계로 전환하게 만든 사건임은 틀림없다. 감정이 이성보다 앞서는 나이에는 충분히 가능한 상황이지만 동호에게는 다른 사람의 시선, 내 감정의 혼란에 빠져 이수가 가진 호감에 대해 고마움보다는 분노가 앞설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에 동호의 행동에 수긍이 가기도 했다.
“그냥 아니라고 말하면 다 괜찮아지는 일이었다.”(110쪽 중) 제로에게 밴쿠버, 즉 이수는 대답을 못한 채 자리를 떴고 제로의 사랑은 그저 짝사랑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해주는 작은 이벤트로 끝이 난다.
그렇게 얽히고 꼬인 관계로 미지의 세계에서 만난 동호와 제로는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다독이는 관계로 발전하게 되고 한뼘 더 성장하여 다음 시간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청소년은 육체 뿐 아니라 정신의 성장도 매우 중요한 시기로 이 시기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 그 불균형으로 인해 작은 폭풍에도 쉽게 스러질 수도 있다. 특히나 코로나로 인해 관계 맺기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는 세대인 우리 아이들에게 우정의 가치를 전해주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