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46세에 닥친 뇌종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 것 같다. 새섬은 정말로 운명을 원망하지 않는 걸까?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운명의 부당함에 대해 분개했던 이반 일리치 같은 캐릭터다. 자신은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이른 죽음이라는 벌을 받아야 하느냐며, "왜, 도대체 무슨 이유 때문에 내가 이토록 끔찍한 일을 당해야 하는 거지?"라고 울부짖던 이반 일리치의 반응이 더 자연스럽다. 그러나 새섬은 "삶은 원래 부조리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p.41
누구나 언젠가는 죽게 마련이다. 하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예상보다 일찍 죽음을 맞닥뜨리게 되면, 억울한 마음에 스스로를 연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못다 한 일, 이루지 못한 꿈, 결코 먹어보지 못할 음식과 읽지 못할 책, 남은 이들이 나 없이 살아갈 인생... 그런데 여기, 자기 연민을 찾아볼 수 없는 담담한 태도로 '왜 하필 나인가'라고 묻지 않고, '왜 나만 예외겠는가'라고 말하는 이가 있다. 온라인 북클럽 ‘그믐’의 김새섬 대표이다. 남편인 장강명 작가의 소설 <서성이다>를 통해 그가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다. 장강명 작가는 갑작스러운 아내의 뇌종양 발병 이후, 병원과 현실적인 문제들 사이에서 흔들리던 남편의 심리를 통해 자신의 실제 경험담을 들려 주었다.
이번에 만난 책은 그가 투병 이후 시작한 팟캐스트 <암과 책의 오디세이>를 듣고 스위스에서 김진경 작가가 인터뷰를 요청해 이루어진 것이다. 인터뷰는 죽음을 다룬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하고 그에 관련한 질문과 답변이 오가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암 환자에게 좋다는 음식을 찾아다니거나 가혹한 운명을 원망하는 대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로 한 것은 암에 맞서는 방식치고는 꽤나 독특한 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각종 치료 방법을 모두 동원하더라도 평균 생존 기간이 12~14개월인, 악성도가 매우 높은 뇌종양 진단을 받고서 말이다. 이 책에 수록된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그는 방사선 치료와 항암 치료를 병행하는 표준 치료를 진행했고, 두 번째 수술을 했으며, 강연 무대 세바시에서 죽음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했고, 오랜 꿈이었던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도전해 이뤄냈다. 좋은 죽음이란 결국 좋은 삶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책을 읽으면 등장인물에 푹 빠져들죠. 내가 그 사람이 되어서 현실을 잊고 다른 세계로 가는 거예요. 다른 한편으로는 책을 읽으면서 어릴 때부터 사물과 상황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서는 연습을 한 것 같아요. 역사 속 전쟁, 지금은 사라진 위인, 이런 얘기를 읽으면서 저절로 그런 연습이 됐어요.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거예요."
역할극에 몰입한 배우와 같은 구체적인 삶, 동시에 그 상황에서 한 발짝 물러서 자신의 다양한 역할을 객관적으로 관조하는 추상적인 삶. 새섬의 이중생활이다. p.248
이 책은 레프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으로 시작한다. 아마도 죽음에 관한 글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학작품일 것이다. 이반 일리치는 고등법원 판사로 재직하던 중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마흔다섯의 나이로 죽게 된 남자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죽는다는 점을 억울해하며 스스로를 연민한다. 김새섬 대표는 이반 일리치의 마음을 이해한다면서도,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고 세계는 나 없이도 잘 돌아가기 때문에 나만 특별한 대접을 받을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그저 성실하게 살아온 자신이 왜 죽을병에 걸렸냐고 끊임없이 원망하면서 연민을 갈구하던 이반 일리치의 모습은 사실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런데 자신이 특별히 귀할 것도 없고, 그러니 남들보다 짧을 삶을 산다고 크게 아쉬울 것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니 그 초연한 태도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한다. 내 가족이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매일 스스로 물어보지만 답을 찾을 수가 없다고. 인생이란 그런 것이고,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이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는데 갑자기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공포는 어떤 것일까. 좋은 죽음이란 무엇이며, 그 속에서도 왜 인간은 책을 읽어야 하는가. 죽음 앞에서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자기 연민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고통은 삶의 영역인가 죽음의 영역인가...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누구나 한번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가 되면 내가 탄 배도 난파할 것이다. 당신이 탄 배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우리는 언젠가 난파될 것을 알면서도 원하는 방향으로 뱃길을 잡아야 하는 난파선의 선장들이다. 이 책이 그 항해의 연료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