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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침묵
  • 존 비게닛
  • 13,500원 (10%750)
  • 2026-08-19
  • : 1,79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갈수록 침묵의 성소가 줄어드는 세상에서 우리는 더 조용한 세계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는가? 쩌렁거리는 라디오, 재잘거리는 텔레비전, 지지직거리는 스피커, 삑삑거리는 자동차 경보, 따르릉대는 전화, 끽끽거리는 모터, 털털거리는 에어컨, 웅웅거리는 냉장고, 부르릉대는 상공의 비행기, 그리고 그 밖에도 기계시대가 우리 삶에 가져온 갖가지 침입적 소음이 일찍이 1888년에도 예이츠가 그리워했던 "꿀벌 소리 울리는" 고독을 삼켜버리지 않았던 세계를?                p.7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온갖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자동차의 경적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와 발걸음, 카트를 끄는 소리, 공사장의 드릴 소리... 밖에 있던 집에 있던 마찬가지다. 잠깐 하던 일을 멈추고 귀를 기울여 보면 집에서도 각종 전자음과 사물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다. 그래서 가끔 소음에 지칠 때면 물 속에 머리를 가만히 담그고 있는 상상을 해본다. 물 속에서는 소리가 희미해지거나 왜곡되어 잘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욕조에 머리를 담그거나, 수영장에서 물 속에 들어갔을 때 소란스러운 세상의 소리들로부터 벗어나 잠시 침묵의 세계에 온 듯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물 속에서 소리를 제대로 감지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귀가 수중에서 작동하도록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물 속에서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평소에 워낙 소리에 예민한 편이고, 소음에 유난히 잘 지치곤 한다. 그래서 이번에 지식산문 O 시리즈의 주제가 '침묵'이라고 해서 매우 궁금했다. 지식산문 O 시리즈는 들고 다니기에 딱 좋은 판형과 부담없는 분량으로 우리를 둘러싼 일상 속 사물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시리즈는 영국 블룸즈버리 출판사의 대표적인 스테디셀러 ‘Object Lessons(오브젝트 레슨스)’ 시리즈 가운데 특히 흥미로운 책들을 선별해 나오고 있다. 이 시리즈에서 조명하는 사물의 종류에는 한계가 없다. 작가들은 사물이 겪어온 다양한 변화들을, 어떻게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풀어낸다. 형식에도 제한이 없다. 그래서 갖가지 주제와 형식의 다채로운 책들을 만날 수 있어 신간이 나올 때마다 챙겨보고 있다. 현재까지 열 권이 출간되었는데, 그 중에서 여섯 권을 읽었다. 그 동안 여행가방, 트렌치코트, 퍼스널 스테레오, 청바지 등 사물을 주제로 해왔던 것과 달리 형체도 질량도 없는 '상태'에 가까운 침묵이라는 주제가 등장해서 굉장히 기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로런스 스턴의 백지가 독자에게 잠시 멈추라고, 침묵의 공간처럼 보이는 것 속에서 화자의 언어로부터 피신하라고 권했던 것처럼 종이에 적힌 글 속의 빈 공간은 모두 저자의 목소리로부터 벗어날 기회, 심지어 탈출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읽기를 멈출 때 침묵 속으로 피신하지 않는다. 우리 자신의 늘 주절거리는 의식을 끊고 끼어들어 재잘거리는 화자의 목소리를 음 소거하는 것뿐이다.            p.115


현대사회에서 '침묵'이란 사치품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자동차도, 냉장고도, 각종 전자제품들은 어떻게든 소리를 내지 않게 만들기 위해 애쓰고, 공항의 라운지라던가 노이즈캔슬링 헤드폰 등 침묵과 부를 연관 짓게 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일상적 소음에 시달리는 것은 주로 가난한 이들이며, 부자들은 값비싼 비용을 치르며 침묵을 구매하고 있으니 말이다. 침묵이 일종의 사치재가 된 오늘날, 침묵은 사고파는 고가의 상품이 되었다. 소음과 침묵의 분리는 사회계층의 분리를 실현하기도 한다. 침묵이 부자의 사치품이라면 소음은 가난한 자의 질병이며 불평등을 드러내는 계급장인 셈이다. 이 밖에도 강자 집단이 약자들에게 침묵을 강제하는 경우를 비롯해 일상적 차별의 예시와 사회와 기존 권력 유지에 어떻게 기여하는지에 대한 사유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침묵의 읽기' 파트를 재미있게 읽었다. 독서란 침묵의 토론이 아니겠냐는 저자의 의견도 흥미로웠다. 누구나 설득력 있는 내러티브와 잘 쓰인 문장에 휩쓸려 자신을 잊고 상대의 의식 속에 빠져들었다가 전화벨 소리 같은 것이 방해하는 바람에 퍼뜩 정신 차린 경험을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독서란 어느 한 시점에 저자의 목소리와 독자의 의식의 목소리 둘 중 하나가 침묵되어야만 가능한 행위이기도 할 것이다. 독서란 우리가 자신의 목소리를 침묵시킴으로써 상대의 의식의 목소리를 존중하고, 그것이 우리의 목소리와 번갈아 발화하며 대화하도록 허락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최근의 신경학 연구에서 묵독이 실제로 침묵인가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는 정보도 흥미로웠다. 뇌가 '말없이' 읽기를 청각 현상으로 해석한다는 증거가 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은 다양한 영역을 넘나들며 다층적인 시선으로 침묵을 탐구하고 있다. 번잡한 세상 속에서 어딘가에 침묵의 지대를 설정해두고 싶은 마음이 드는 어느 날, 이 책을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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