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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콩 : 사랑을 쓰려거든 콩으로 쓰세요
  • 봉태규
  • 10,800원 (10%600)
  • 2026-08-18
  • : 1,91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오랫동안 사랑을,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나 눈앞에 차려진 따뜻한 밥상 같은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엄마의 사랑을 자주 놓쳤다. 그것은 내가 깨어 있는 시간에 오지 않았고, 내가 알아볼 수 있는 표정으로 놓이지도 않았다. 대개는 모두가 잠든 뒤에 시작되어 냄새로만 남았다. 콩이 익어 가는 냄새, 메주가 마르는 냄새, 장독대 주변에 오래 머무는 짭짤하고 쿰쿰한 냄새. 어릴 때는 그 냄새가 싫기도 했지만, 지금은 안다. 어떤 사랑은 향기롭지 않고, 조금 투박하고, 오래 발표된 냄새를 풍긴다는 것을.                p.41~42


어린 시절부터 콩밥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대체 왜 밥에 콩을 넣어야 하는지 늘 불만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밥에 넣는 콩은 좋아하지 않는다. 콩이 맛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건 포케라는 음식을 자주 먹게 되면서부터이다. 샐러드를 이루는 여러 가지 재료 중에는 병아리콩이나 렌틸콩, 가끔은 완두콩이나 강낭콩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먹을 때는 콩을 골라낸 적이 없다. 콩은 이런 담백하고 고소한 맛을 가지고 있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여전히 밥에 들어간 콩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인생의 모든 '띵'하는 순간, 식탁 위에서 만나는 나만의 작은 세상을 그리며 각자가 좋아하는 음식이나 식재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는 '띵 시리즈' 스물아홉 번째 책의 주제가 바로 그 애증의 '콩'이다. '음식 에세이' '띵' 시리즈는 각 권마다 하나의 음식이나 식재료, 혹은 여러 음식을 하나로 아우르는 데 모두가 납득할 만한 주제를 선정해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데 이번 책은 영화배우 봉태규가 주자로 나섰다. 아내 하시시박 작가와 시하, 본비 두 아이들과 꾸려가는 단란한 가족들의 일상 속에서 온갖 콩과 관련된 음식들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람을 알아간다는 건 꼭 거창한 고백을 들어야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냉장고에 어떤 재료를 늘 두는지, 빵은 얼마나 굽는지, 양파의 아린 맛을 얼마나 빼는지, 올리브유를 어느 정도 둘러야 맛있다고 느끼는지. 그런 사소한 선택들이 모여 한 사람의 지도가 되었다. 나는 원지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를 먹으며 그 지도를 조금씩 읽었다. 가본 적 없는 도시의 이름보다, 그곳에서 혼자 차려 먹었을 아침의 맛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다. 후무스는 낯선 나라의 음식이 아니라, 내가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가닿는 부드러운 길 같았다.               p.173


어떤 음식은 맛보다 먼저 사람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에겐 두유가 그렇다고 한다. 콩을 불리고 삶고 갈아낸 시간보다, 그것을 해내겠다고 마음먹은 한 사람이 먼저 생각나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어서도 두유를 마실 때면 어린 시절의 그 여름이 떠오르고, 차갑고 고소하고 달콤한 맛과 콩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혼자 맷돌을 옮기고, 아무 말 없이 이불을 덮어주던 오른손이 떠오른다고 말이다. 젓가락질을 못하면 복이 달아난다고 아버지께 혼이 나던 어린이는 자라서 자신의 아이들에게 어떻게든 건강한 채소를 먹이려 갖은 노력을 다하는 아빠가 되었다. 콩이 싫어서 콩밥에서 콩을 하나씩 골라내던 어린이는 엄마가 되었지만, 아이에게 콩을 먹이려고 애쓰는 대신 콩을 빼버리고 밥을 한다. 콩 대신 각종 잡곡들을 가득 넣어서 말이다. 달라진 건 어른이 된 나는 콩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아이도 언젠가는 콩을 가리지 않고 먹게 되지 않을까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두부, 콩자반, 콩밥, 된장, 두유 등 콩은 늘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지만, 그럼에도 그 본질은 항상 같다. "그러니깐 콩이 달라졌는데, 그게 결국 콩이라는 거네."라는 극중 문장처럼 말이다. 무슨 과정을 거쳤다고 해도 콩이라는 본질이 바뀌는 건 아닌 것처럼, 가끔은 단순하고 명확한 진리를 우리는 잊고 사는 것 같다. 주인공이 아니어도 괜찮은 순간이 있고, 살고 싶다는 마음이 된장찌개 한 그릇으로 오기도 하며, 작고 하찮은 자숙콩을 보며 위안을 얻기도 하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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