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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자신을 죽인 남자
  • 줄리안 시먼스
  • 15,750원 (10%870)
  • 2026-08-05
  • : 1,51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프레이컷에 사는 지인이 찾아오기로 마음먹으면, 그곳에 사무실이 있었고 사무실 생활이라는 무대 장치 가운데 앉은 아서가 있었다. 아서는 그곳에서 과거의 살인 사건에 대한 책을 읽으며 한참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는 언제나 범인의 정체를 알면서도 유죄를 선고할 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짜인 살인 사건에 흥미를 느꼈다. 사무실에는 '영국의 유명 재판' 시리즈가 들어찬 책장이 있었다. 아서는 그 책들을 읽고 또 읽으면서 완전범죄를 꿈꾸던 범인들이 어디에서 실수를 저질렀는지 관찰했다.               p.66


아서 브라운존은 위압적인 아내 클레어에게 억눌려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들조차 아내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는 그를 안타까워하지만, 클레어가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 자기보다 못한 남자와 결혼했으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고 여겼다. 아서는 참을성 있고, 소심하며, 우유부단한 남자였지만 점차 숨막히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한편, 이즌비 멜런 소령은 결혼중개업체를 운영하는 대담하고 단호한 성격의 남자였다. 그의 아내 조앤은 그가 첩보원이라고 알고 있었고, 가끔 떠나는 해외 출장을 비롯해 그가 만들어낸 첩보의 세계를 너무나도 쉽게 믿었다. 


소령은 어느 날 고객으로 온 퍼트리샤 파커라는 젊고 예쁘장한 여자에게 한 눈에 반하게 되고, 그때부터 일이 복잡하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아서 브라운존과 이즌비 멜런 소령은 사실 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정반대되는 가공의 인물을 만들어 내고 두 여자와 각각의 삶을 나름대로 완벽하게 영위해 왔던 그에게 정체성의 위기가 닥치게 된 것이다. 애초에 두 가지 삶을 한 사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부터 말이 안되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는 아서 브라운존으로 금요일에서 월요일까지, 이즌비 멜런 소령으로 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살았다. 늘 나긋나긋하고 폭신한 쿠션 같은 조앤과 남편을 지배하려는 성향의 클레어라는 완전히 다른 두 여자를 아내로 데리고 말이다. 결국 궁지에 몰린 아서는 결국 한쪽을 완전히 지워버리기로 결심하는데, 과연 그는 자신을 완벽하게 죽일 수 있을까. 




자신이 유의미한 방식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예전에 읽은 기묘한 소설을 떠올렸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로 인해 내면의 삶이 송두리째 파괴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는 겉으로는 완벽하게 기능하였고 심지어는 성공하기까지 했기에, 교수 자리를 제의받았을 때 "교수진은 그들의 대열에 들어온 것이 진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차가운 껍데기라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역시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인가? 아서 브라운존은 클레어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이즌비 멜런은 반드시 빠져나가야만 하는 그물에 갇혔다.                   p.218


추리 소설이라는 장르의 역사를 다루었던 명작 <블러디 머더>를 쓴 줄리언 시먼스의 대표작이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 42번째 작품으로 나왔다. 나 역시 <블러디 머더>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기에, 줄리언 시먼스가 추리 소설 작가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게다가 국내에는 그의 '소설'이 이번에 처음 출간되는 것이니 그 동안 줄리언 시먼스를 비평가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도 많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미스터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뛰어난 작가이기도 했다. 그의 초기 작품들은 전형적인 황금기 고전 미스터리 스타일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다 점차 인간 심리에 대한 관심이 생겼고, 작품 역시 인물의 내면에 주목하는 스타일로 변화를 겪게 된다. 


그는 작가이자 비평가로서도 명성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기존 스타일을 답습하는 작가들에게 통렬한 비판을 가하는 동시에 직접 새로운 스타일의 미스터리를 집필하게 된다. 이 작품은 그가 비평가로서 역설한 범죄소설 작법이 집대성된 대표작이다. 그는 영웅적인 탐정 캐릭터 대신 평범한 소시민을 범죄소설의 주인공에 두었다. 그의 작품에서 미스터리의 핵심은 '누가 범인인가'가 아닌 '왜 무고한 사람이 범인으로 만들어지는가'에 놓여있다. 그러한 특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작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이다. <자신을 죽인 남자>는 평범한 한 인물이 범죄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린 심리소설로서도,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위선과 모순을 가차 없이 드러내는 범죄소설로서도 매우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추리소설에서 이중생활이라는 소재는 매우 고전적이지만, 시먼스는 거기에 서스펜스와 블랙코미디의 유머를 더해 색다른 미스터리를 탄생시켰다. 엘릭시르의 ‘미스터리 책장’ 시리즈를 즐겨 읽어 왔다면, 이 작품도 놓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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