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빠는 내가 아빠를 싫어하게 할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았다. 아빠가 죽었을 때, 나는 어쩌면 그것이 아빠를 더 원망하지 않은 결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마커스처럼 카르마에 놀아나지를 아 ㄶ아서, 세상이 선악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아빠를 죽여야만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그건 삶이 그 어떤 일에도 이유를 전혀 알려 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기 전의 생각이었다. 때로 아빠들은 사라지고 어린 소녀들은 다음 생일을 맞지 못하고 엄마들은 엄마이기를 잊기도 한다는 걸 배우기 전이었다. p.113
열일곱 소녀 키아라는 오클랜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오빠 마커스와 단둘이 살고 있다. 아빠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엄마는 약물 중독으로 아기를 죽게 만들었다. 과실치사로 교도소에 수감되는 대신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고 있었다. 남매 모두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돌봐줄 어른 없이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 하지만 마커스는 래퍼라는 부질없는 꿈에만 매달리느라 집안 살림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키아라는 두 배로 오른 아파트 월세를 감당하기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서지만, 열여덟이 되지 않는 미성년자를 직원으로 받아줄 곳은 없다. 우린 더이상 집세 인상을 감당할 돈이 없다고, 2주 안에 나앉게 될 거라고 말해봤자 마커스는 자신이 기회만 잡으면 큰 돈을 벌거라고 꿈 속에서 헤어나오질 못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우연히 술에 취한 낯선 남자를 만나게 되고, 미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닫기도 전에 그 일이 벌어진다. 남자는 대가로 200달러를 주고 그날의 경험은 키아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게 된다. 고작 몇 분의 일로 얼마나 많은 지폐를 벌 수 있는지, 이제 난 경험이 있고 다시 할 수 있다고, 그저 몸일 뿐이라고, 그 이상일 필요 없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냥 집세 빚에서 우리를 꺼낼 때까지만 해보자고, 당분간만 할거라고, 이게 우리가 살아갈 유일한 방법이라고 다짐한다. 환한 거리의 불빛에서, 아침에 버는 돈을 원했던 어린 소녀가 해가 지고, 밤이 온 뒷골목에서 살기 위해 스스로를 버려야 했던 것이다. 실제로 사회의 보호망이 무너진 세상에서 홀로 살아 남아야 하는 수많은 청소년들이 키아라와 비슷한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 사회적 불평등 속에서 가장 취약하고 비인간화된 흑인 여성이라면 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평소에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밤이 모든 걸 물들이는 방식에는 믿고 싶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더 좋은 세계일 필요는 없다, 그런 건 존재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그곳이 좀 다를 거라 생각한다. 거기선 사람들이 좀 다르게 걷는다든가. 노래로 말을 한다든가. 어쩌면 모두 얼굴이 같거나 얼굴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하늘을 바라볼 시간이 충분할 때면, 나는 내가 운 좋게도 그 무언가를 얼핏 볼지도 모른다고 상상한다. 하지만 항상 이 행성에 끌려온다. p.210
2022년 미국에서 출간되자마자 오프라 북클럽에 선정되고, 그해 부커상 롱리스트에 최연소 후보로 지명되었던 화제의 작품이다. 릴라 모틀리는 이 작품에서 데뷔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완성도 높은 필력을 보여주는데, 실제 작품을 쓰기 시작했을 때 극중 키아라처럼 열일곱 살이었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열일곱 소녀가 취약하다는 것,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런 식의 통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매우 놀랍기 그지 없다. 2015년, 작가가 오클랜드에 사는 10대 청소년이었을 때, 실제 벌어졌던 뉴스를 토대로 이 작품이 출발했다. 오클랜드 경찰서와 해변 지역 다른 경찰서의 경찰들이 한 어린 여자애의 성적 학대에 가담하고 이를 덮으려 시도한 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사건뿐만 아니라 경찰의 손에 폭력을 경험하고도 알려지지 않고, 법정에서도 서지 못한, 그리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성매매업 종사자와 젊은 여자들의 사건들은 과거에도, 지금도 여전히 많다.
이 작품을 읽는 내내 키아라에게 더 감정 이입하고, 그녀의 상황을 이해하고, 공권력의 횡포에 함께 분노했던 이유는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같은 사건이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쓰였다면 또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흑인 여성으로서 겪는 공포와 위험, 강제로 성인화되는 소녀들의 현실을 지켜보는 것과 함께 경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니 말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지만 여전히 사회 주류는 백인 남성이고 수없이 많은 차별과 혐오가 만연한 나라이다. 소위 주류에 속하지 못하는 인종•계층에 대한 편견과 혐오는 사회 곳곳에서 차별로써 존재하며, 수많은 범죄와 부작용을 야기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세상이, 안타깝게도 그렇다.
헤어나올 수 없는 가난과 절망 속에서, 내일이 오늘보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세계 속에서도 키아라는 옆집에 방치된 아홉 살 소년을 돌보고, 엄마와 오빠를 원망하면서도 사랑한다. 세상의 어두운 면을 자신의 시선으로 받아들이며,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어린 소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이용하는 잔인한 세상 속 어른들의 모습이 그려지는 현실이 대비되면서 작품의 주제 의식이 더 강렬하게 와 닿았던 것 같다. 게다가 릴라 모틀리는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해서 문장이 정말 서정적이고 아름다웠는데 그래서 더 이런 현실이 슬프게 느껴졌다. 한창 세상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할 나이에, 눈에 띄지 않게 사라지는 것이 안심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어른들로부터 보호 받아야 마땅한 시기에 왜 매일 살아남기 위해 애쓰고 버텨내야만 한단 말인가. 우리는 이 작품이 던지는 질문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