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테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슬픔은 여러 모습일 수 있지만, 슬픔이 한심한 경우는 드뭅니다. 좋은 슬픔은 언제나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무언가를 말해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미넷은 그 말을 가져와 천천히 곱씹어 보았다.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이렇게 빠르게 마음을 여는 것이 가능한 일이었나? 순수하게 그림 하나를 주고받으면서, 기대하지 못한 선물 하나가 오가면서, 세대와 배경과 출신지가 다른 두 사람이 마음을 확 열어버릴 수 있나? p.63
공인회계사로 일하는 미넷은 이상한 편지를 하나 받는다. 어떤 할아버지가 카페에 걸린 그녀의 연필 초상화를 샀는데, 그 그림을 선물로 주고 싶다며 다음 주 목요일에 분수대에서 만나자고 연락이 온 것이다.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일하는 남편 데릭과 함게 이상한 편지가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건지, 위험한 일에 휘말리는 건지 의심해보지만 두 사람은 먼저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단정한 필체, 최고급 편지지, 경계심을 풀게 만드는 말투, 이름만 있는 서명, 반송 주소 없음. 묘하지만 어딘가 신뢰가 가는 느낌... 편지를 읽고 두 사람이 느낀 것들이다. 그들읜 경찰서에 가서 그 편지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도 있었지만, 직접 만나러 가보기로 한다. 과연 그들에게 편지를 보낸 수수께끼의 남자는 누구일까.
노신사 '테오'는 한적한 소도시 '골든'에 도착한다. 이 도시에 그가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럼에도 편안하고 포근해 머물기 좋은 곳이라는 것이 그의 첫 인상이었다. 그는 에스프레소가 근사한 한 카페에서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초상화들을 보게 된다. 흑백 연필화로 그려진 총 92점의 초상화들은 모두 같은 화가의 그림이었다. 그림마다 특별함이 있었다. 화가는 어떻게 이 모든 얼굴을 이렇게나 설득력 있게 그려낸 걸까, 테오는 생각한다. 게다가 이렇게 많은 초상화가 아직도 판매되지 않고 남아 있다는 사실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뛰어난 초상화가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는데도 말이다. 그는 이 92개의 액자가 모두 창문이라면 어떨까 생각하며 그 초상화들을 구매해서 그림 속 사람들에게 선물하기로 한다. 그렇게 한 명씩 직접 만나 눈을 맞추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초상화가 주인을 찾아가기 시작하는데, 이 대가 없는 선의와 무용해 보이는 친절로 인해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까.

테오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종이 한 장에 불과한 것. 편지든, 사진이든, 티켓이든, 스케치든, 그림이든 왜 그 종이 한 장을 네 조각의 나무틀 안에 끼워 유리판 아래에 넣는 순간, 완전히 다른 것이 되어버리는 걸까? 덧없는 순간을 영구적인 경계선으로 두른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가 특정한 기억을 고정시키려고 수고스럽게 노력하고 우리 삶의 ‘아주 사소한 순간들’을 붙잡아 두고 보존하기 위해 적지 않는 에너지를 쓰는 행동이 우리 인간에 대해 무엇을 말해주는 걸까? p.189
이 작품은 한 70대 음악가의 놀라운 데뷔작으로 자비출판으로 시작해 오직 입소문만으로 밀리언셀러가 되었다. “바로 그 하얀 책(The White Book)”으로 불리며 2025년 전 세계를 뒤흔들었는데, 킨들 조회수 1,300만, 굿리즈 독자 평점 34만 건 돌파하며 엄청난 화제였던 작품이다. 드라마틱한 서사도, 도파민 넘치는 전개도 없는 이 작품이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다양한 인물들의 삶을 바라보는 선한 마음과 다정함이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는 작은 기적을 보여주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대가 없는 친절이나 타인을 향한 온정 어린 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그래서 더 이 작품이 주는 울림이 크게 다가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갈수록 사람의 가치가 추락하고 있는 세상 속에서 다정함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도 하고 말이다. 이 작품을 읽으며 다정함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건 나와 다른 타인에게서 나를 발견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발견하는 일이며, 그의 처지가 되어 사유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서로의 잘됨을 위해 움직이는 것 아닐까. 사소하고 작은 그 선택이 어디에서 소멸되지 않고 누군가를 통해 연결되고 확장되어 반드시 다시 내 앞에 나타난다는 것. 그러한 순환이 우리가 말하는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 아닐까. 이 작품을 읽으며 누군가는 테오와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보게 되었다. 이 다정한 이야기가 만들어내는 고요한 기적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