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이 영원한 타자를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적지 않은 노력을 들인다. 열심히 말을 걸어 보고, 기분을 추측하고, 왜 화가 낫는지 몰라 쩔쩔매고, 먹은 것과 싼 것을 토대로 건강 상태를 짐작하고, 서로가 없는 삶을 상상하기도 하고, 나의 것도 너의 것도 아닌 새로운 언어를 고안해 보고, 다투기도 하고, 눈빛 하나 몸짓 하나에 반응한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천천히 길들어 가는 것이다. 김영글, '오전의 고양이' 중에서, p.18~19
'반려동물'이라는 말은 이제 '애완동물'을 대체하는 표현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식물을 돌보는 이들에게는 '식집사'라는 애칭이 붙었다. 그만큼 동물과 식물이 취향이나 소유의 대상이 아닌 삶의 동반자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다. 고양이, 개, 식물 등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을 돌보고 관계를 맺는 일은 끊임없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게 하고, 한계와 마주치기도 하며, 서로의 삶에 영향을 주고받게 되는 과정이다.
이 책은 『시사IN』에 2년간 연재되었던 칼럼 '반려인의 오후'를 다듬고 몇 편의 글을 보태 엮은 것이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각각 고양이, 식물, 개와 함께한 이들의 일상을 담아 진정한 '반려'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미술작가 김영글은 요다, 모래, 녹두,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길고양이 셋과 우여곡절 끝에 가족을 이루었다. <오전의 고양이>에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사랑한다는 것의 의미와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쌓이는 작은 감동과 각성과 분투가 담겨 있다. 고양이를 인간의 뜻대로 훈련시킨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물론 어느 정도 행동을 유도하거나 반응을 예측할 수는 있겠지만 말이다. 모레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고양이로 필요할 때는 애정과 관심을 요구하며 애교를 부리지만, 조금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까칠한 태도로 사람의 말을 무시한다. 겁이 많지만 야생성이 남아 있는 요다, 식탐 많고 순한 녹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삶과 공존하고 있다.

식물을 나름의 인간으로 바라보는 일은 식물의 삶에 연결된 크고 작은 것들을 하나하나 살피는 데서 시작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식물이 '작은' 혹은 '약한' 존재가 아니라 '다른' 존재임을 알아간다. 이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진, 그러므로 서로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존재들의 삶을 연결해 나가는 일일 테다. 인간이 자신과 전혀 다른 식물의 모습으로부터 이런저런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사실 식물이 나름의 인간이고, 인간 역시 나름의 식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안희제, '오후의 식물' 중에서, p.195
문화비평가 안희제는 손에 물과 흙을 묻히며 매일 식물을 들여다보는 일상을 통해 플랜테리어가 아닌 홈 가드닝으로 식물에 다가간다. <오후의 식물>에서는 식물과의 공존을 통해 인간 중심의 시선에서 벗어나 이런저런 삶의 지혜를 얻게 되는 나날이 그려져 있다. 식물은 전보다 우리의 일상에 더욱 깊숙이 들어와 있다. 중, 노년층의 취미로 많이 여겨져 오던 식물 기르기가 이제 올드한 것이 아니라 힙한 취미가 된 것이다. 하지만 반려식물과의 생활은 즐거움만이 아니라 동네에 살아가는 다양한 존재들에 대한 고민 또한 함께 안겨준다. 깊은 관찰과 일상의 변화를 수반하는 책임을 식물과의 삶 안에서 고민할 수 있는 글이라 매우 공감하며 읽었다. 만화가 정우열은 노견 풋코와 긴 세월을 함께해왔다. <저녁의 강아지>에는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과 필연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이별의 과정이 담겨 있다. 동네 빵집을 향해 질주하던 풋코는 열여덟 살에 접어들며 점차 거동이 불편해지고, 서서히 다가오는 끝을 준비해 간다.
사람이 죽음을 맞으면 무지개다리 너머에서 기다리고 있던 반려동물이 마중을 나와 반겨 준다는 이야기가 있다. 가족처럼 지냈던 반려동물을 무지개다리로 보냈던 적이 있기에, 나 역시 그 말을 오래도록 믿어왔다. 굉장히 오래 우리 곁에 있어 노견이 되어 떠났기에, 막판에는 여기저기 불편한 부분이 많은 상태로 보내야 했다. 그래서 무지개다리에 간 우리 토토는 불편한 부분 하나 없이 그곳에서 마음껏 뛰어 놀고 있을 거라고, 그래서 먼 훗날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반갑게 맞아줄 거라고, 그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느낌이었으니 말이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어떤 존재와 '반려'의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꽤나 품이 많이 들고 수고로운 일이다. 하지만 다른 존재와 함께 하려는 그 마음이 우리를 더 나은 어딘가로 이끌어 가는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세상은 아직 아름다운 거라고 믿고 싶다. 이 책을 통해 돌봄과 생명에 대해, 진정한 반려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