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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이름의 빈자리에
  • 권혁란
  • 16,200원 (10%900)
  • 2026-06-05
  • : 60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된 자의 서늘한 뒤통수, 내가 살던 세상이 얼마나 이상한가를 처음 깨닫는 긴장한 목덜미, 내가 알던 모든 말들이 왜곡되었다는 걸 알게 된 뜨거운 정수리. 무엇보다 이름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을, 법열로 들끓고 있을, 보이지 않는 두 개의 눈동자.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델 것처럼 뜨겁고도 차가운 그 장면을 보면서 저 큰딸만큼이나 조용히 그러나 머리에서 번개가 치듯이 놀랐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p.24~25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이 창조해낸 괴물에게 '이름을 만들어 주지 않았다. 괴물은 왜 자신을 태어나게 했느냐고, 왜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왜 이름도 주지 않았느냐며 자신의 고독한 삶에 대해 토로한다. 이 작품을 쓴 메리 셸리는 여성 작가의 창작 활동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자신이 온 힘을 다해 쓴 글임에도 익명으로 책을 출간해야 했다. '이름조차' 받지 못했던 괴물의 운명과 자신의 '이름 없이' 책을 펴낼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운명은 묘하게 겹쳐진다. 이번에 만난 책은 이렇게 이름을 빼앗긴 존재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다.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에서 길리어드의 권력층 남자들은 시스템을 이용한 신원 조회를 통해 가임기 여성들을 잡아 와 시설에 가둔다. 아기가 잘 태어나지 못하는 곳에서 임신 능력을 가진 여자라면 귀중한 존재지만, 그들은 소중하니까 통제해야 한다는 논리 아닌 논리를 가지고 있다. 시녀로 분류된 여자들은 지난 삶의 인간관계 전부와 평생 쓰던 이름을 빼앗긴다. 새 이름은 아기 없는 높은 계급의 불임 부부에게로 파견, 배치되면서 주인 남자 이름 앞에 전치사 '오브'만 붙은 것이다. 그들의 유일한 임무는 임신과 출산이다. 사람에게 '오브'를 붙여 소유물로 지칭한다는 작명 시스템이 오싹해지는 작품이었다. 시녀들은 그야말로 저주받은 이름의 지옥에 갇히게 된 것이다. 시녀들에게 이름이란 뺏어도 되고 지워도 되고 바꿔도 되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녀는 밤마다 이름을 외던 원수들을 찾아가 어떤 다른 이의 얼굴로 자유자재 변환해서 단호하게 처단한다. 아리아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가, 누군가의 얼굴이었다가, 얼굴 없는 자가 되었다가, 여러 얼굴을 가진 자가 되었다가,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된다. 

“너는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었다.” 

마침내 스승이 말하던 그 순간, 정확하게 자신의 이름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아닌 자가 되어야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지을 수 있다.               p.208


이 책은 프랑켄슈타인 속 이름없는 괴물부터 소유격 전치사로 이름 붙여진 여자들이 등장하는 <시녀 이야기>, 영화 <윤희에게>, <허공에의 질주>,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를 외치는 김소월의 시 등 장르를 넘나드는 20편의 작품 속 '무명의 존재'들을 만나볼 수 있도록 해준다. 괴물, 여성, 망자... 이름 없는 존재와 호명되지 못한 존재들에 대한 사유는 한때 나를 스쳤던 이름들과 서로를 부르는 우리의 이름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호명하며 살아가는 이름들, 함부로 붙여진 이름, 빼앗긴 이름, 금지된 이름, 부르지 못한 이름, 부르면 안 되는 이름, 부르다 내가 죽을 이름, 내가 지은 내 이름, 남이 부르는 내 이름.... 우리의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에 내려 앉은 마음과 허공에 뜬 목소리. 이 책을 읽다 보면 내게 남아 있는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불러보고 싶어진다. 


초등 학교 시절에 같은 반에 나랑 이름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평범한 이름이라 그런지 가끔 그런 경우가 생기곤 했는데, 그럴 때면 단순하게 키에 따라 큰00, 작은00라고 부르곤 했다. 키가 커서 늘 뒷자리에 앉고 했던 터라 난 큰00이었는데, 어릴 때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왜 재는 이름이 나랑 같아서 이렇게 불리도록 상황을 만든 걸까 싶었던 거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사회에서 마주하게 되는 이름이 같은 사람이 참 반갑게 느껴졌다. 어른이 되고 보니 성까지 같은 경우는 잘 없었고, 아주 가끔 성은 다른데 이름이 같은 사람이 있었다. 그것만으로 그냥 친밀감이 생기는 느낌이랄까. 이름이란 참 이상한 관계성을 부여하는 구나 싶었던 기억이 난다. 이렇게 이름은 내 존재를 일컫는 고유명사이다. 우리는 그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고유한 개별성과 특별한 관계성, 사회적 맥락이 모두 교차하는 것이 바로 이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닿게 만들고, 서로를 구별하고 기억하게 만드는 '이름'들이 떠도는 빈자리를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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