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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슬픈 호랑이
  • 네주 시노
  • 17,820원 (10%990)
  • 2026-03-30
  • : 7,01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 말을 주의해서 들어야 한다. 내 말들은 언제나 가면을 쓴 채로 나아갈 것이다. 이 글을 전체적으로 하나의 고백으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이 글에는 일기가 들어 있지 않다. 되도록 솔직하게 그린 내면 풍경도 없고, 거짓말도 없다. 나에게 속한 나만의 공간은 행간에 있지 않고, 행 자체에도 있지 않으며, 그 어디에도 없고, 오로지 내 안에만 존재한다.               p.66


나보코프의 <롤리타>는 그 나름대로 하나의 사랑 이야기라고, 금기를 바탕으로 구성되어 있기에 더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교활한 사랑이고 유죄 판결을 받아 마땅한 사랑이지만, 어쨌거나 사랑이긴 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저자는 미국 문학에 관한 어느 강의를 듣기 위해서 <롤리타>를 처음 읽었었고, 이 책을 쓰면서 다시 읽어 보았다고 말한다. 나 역시 이 작품이 도발적인 문학 작품임에는 확실하지만, 이야기를 서술하는 화자의 시점이라던가 관점에 동의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범죄니까. 그러니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정의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롤리타의 처지를 자신에게 대입해 자신의 과거를 조각조각 들여다보기 시작한다. 저자의 의붓아버지 역시 <롤리타> 속 험버트 험버트처럼 성도착증 환자였다. 알프스산맥 속 작은 마을에 살던 저자는 갑작스럽게 어머니의 새 남차친구와 가족이 되었고, 대가족을 꿈꿨던 그는 아주 빠르게 아이 둘을 새로 가진다. 그는 키가 크고 힘이 세며 난폭하기까지 했고, 늘 소리를 지르고 명령하고 지시했다. 그는 아이들이 도덕적으로 처신하도록 엄격하게 요구했다. 정작 자신은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가족 또는 가정이라는 닫힌 세계에서 전능한 존재였던 그를 저자는 조물주 같은 존재, 실물보다 더 큰 존재로 여겼다. 끔찍한 일이다. 저자는 신문과 편지 스크랩 등을 함께 수록하며,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어 어머니와 함께 의붓아버지를 고소하기까지의 과정을 재구성했다. 아니 에르노는 '어른에게 강간당하는 아이가 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진정으로 보게 만드는 작품이라고, 모두가 읽어야 한다고 이 작품을 추천했다.




악은 여기저기 도처에 있다. 악은 모든 것의 색깔과 맛을 달라지게 만든다. 악을 무시하거나 잊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다. 우리가 악에서 도망치면 칠수록 악이 더 빨리 우리를 잡으러 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세계에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에 버티며 살 수는 있다. 그 세계의 문턱에 머무는 법을 배우라. 그렇게 도전하라. 우리 운명들의 줄 위로 곡예사들처럼 걸어라. 비틀거릴 수는 있지만, 다시 한번 말하거니와,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떨어지지 말라.              p.350


이 책은 어릴 적 의붓아버지에게 지속적으로 성적 학대를 당한 저자가 쓴 자전 소설이자, 에세이, 회고록이다. 그 남자가 못된 짓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아이는 겨우 아홉 살이었다. 7년에 걸친 수난을 당하고 아이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그녀는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어머니에게 털어놓았고, 어머니는 고소장을 제출했다. 그 남자는 9년 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범수라는 이유로 5년밖에 복역하지 않았다. 이는 성범죄자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는 다시 사회에 복귀해서, 다른 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고 평범하게 살고 있다. 자신이 저질렀던 일을 후회하고 용서를 구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피해자는 여전히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이해하고자 애쓰며 살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해자들은 그냥 다시 살아간다. 안타깝게도 그것이 현실이다.


이 책을 읽으며 시종일관 화가 났고, 마음이 아팠다. 누구나 이 글을 읽으며 분노가 치밀고 슬픔이 북받치는 경험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순히 고백이나 회고록으로 치부하기엔 훨씬 더 넓고 깊다. 저자가 가정을 꾸린 40대가 되어 자신의 어릴 적과 똑 닮은 딸아이를 보며 글을 썼기 때문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자문한다. 나는 왜 이 이야기를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스스로 질문하고 답을 찾는 과정이자 그 결과물로 어린아이가 침묵에서 벗어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술과 문학이라는 형태로 자신의 경험과 사유를 그려 나갔다. 끔찍한 비극이 벌어졌을 때 무엇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문학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고통스럽지만 찬란한 대답이자, 빛나는 문학적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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