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내가 그랬을 리 없는데 네가 운다. 소주병을 쌓아두고 술집 구석에서. 너를 내 무릎에 눕히지 않는다. 어른이 되어서도 혼자라고. 고아라고. 너의 머리를 쓰다듬지 않고 눈물을 닦아주지 않는다. 너는 테이블을 엎고 벽을 친다. 네 상처에 약을 발라주지 않는다. 나는 반대쪽 구석 테이블에 앉아 술만 마신다. 아무도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 '마주침' 중에서, p.35
'교유서가 시집'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이다. 소후에 시인의 <우주는 푸른 사과처럼 무사해>, 원성은 시인의 <비극의 재료>, 리사 시인의 <우리의 슬픔은 전문적이고 아름다워>, 기혁 시인의 <소설책>에 이어 송하얀 시인의 <그 책은 내 빈 심장에 끼워둘게>가 나왔다. 교유서가의 시집이 특별한 것은 표지 빛깔에 맞는 컬러로 내지에 그라데이션을 줬다는 점이다. 심플한 표지 이미지도 마음에 들고, 페이지를 펼치면 만날 수 있는 은은한 색감도 너무 예쁘다.

이번에 만난 것은 송하얀 시인의 첫 시집이라고 하는데, 수록된 41편의 시들이 대부분 산문시 형식으로 쓰였다. 여성들이 사회에서 겪는 차별과 억압 들에 대해 그리고 있어서인지 굉장히 어둡고, 무겁다. 개인적으로는 그 동안 읽어 왔던 시집들에 비해 다소 어렵게 느껴졌는데, 다행히 '교환독서'라는 형식으로 읽게 되어 어려운 부분들에 공감하고, 그려진 현실에 대해 함께 분노하며 읽었다.
서두에 쓰인 '시인의 말'에서 시인은 '고통은 문장의 윤곽이 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시적인 언어들 아래 지독하게 솔직한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줄기 빛이 있고, 눈빛이 마주치고, 웃으며 꿈꿀 수 있는 희망이 희미하게 담겨 있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저 멀리 빛이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어떤 현실 속에서도 '빛나는 것들은 여전히 빛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절교를 선언한 한 사람/너는 화를 내고 나를 붙들고 흔들어댄다.//같이 마시던 술이 몸안에서 출렁인다./예전의 내가 나에게서 떨어져나갈 듯/내 어깨 끝에 매달려 있다.//내 어깨에 닿은 너의 손은 아직 따뜻하다./어떤 사람 그런 사람 그때 걔/한때의 우리는 우리를 우리라 부르지 못할 것 같다.//사람에게 토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만// - '웃는 사람' 중에서, p.80
전반적으로 어둡고, 묵직한 분위기이지만, 그 중에서도 '오버타임'이라는 시는 시각적으로도 눈앞에 그려지는 듯해 오싹한 기분으로 읽었다. 시작부터 엘리베이터 바닥에 핏물이 고여 있고, 집에 들어가기 위해 수북하게 쌓인 손목들을 치워야 한다는 문장이 서두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아침마다 잘린 손목들을 밟고 가야 하는 이유, 남은 손들이 문을 두드리고 욕설을 퍼부어도 문을 닫아버리고 스스로를 지켜야 하는 현실이 두 페이지 안에 차곡차곡 담겨 있어 무섭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는 지금도 어디선가 어떤 '일'을 겪고 힘들어 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되길, 스스로를 살리는 일이 가장 고귀하고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잊지 말길 간절히 바라며 읽었다.

인상적인 시들이 많았지만, 가장 마음에 남았던 것은 '엄마의 독서법'이라는 시였다. 이 시 속에서 그려지고 있는 엄마라는 존재가 우리가 익히 상상하는 모성의 상징이 아니라 상처와 욕망으로 얼룩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더는 읽지 않는 책들이 쌓여 있다는 것은 엄마가 이루지 못한 꿈과 미래일 것이고, 책 사이에서 면도날을 꺼내 스스로를 베는 행위는 고단한 현실 속에서 이상을 꿈꾸기 위해서 치뤄야 하는 대가같은 게 아닐까. 그런 엄마를 자는 척하며 몰래 지켜보는 내가 만드는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 본다.
이 시집은 후반부에 수록된 해설도 아주 좋았는데, 평론가님의 문장도 마치 시처럼 읽혔기 때문이다. "시는 그 불가능성 속에서도 남은 온기를 찾으려는 간절한 시도다. 그것이야말로 송하얀의 시가 품은 가장 윤리적인 감각에 해당한다"는 문장에 특히 공감하며 밑줄을 그었다. 시집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생각이 많아지는 것 같다. 오독의 자유가 보장된 장르이지만, 생각이 많아질수록 더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그럼에도 시를 읽는 시간이, 문장과 문장 사이 여백에서 상상하는 시간이 참 좋다. 자, "말하지 못하는 자의 말, 들리지 않는 자의 숨, 사라진 자의 흔적을 품으려는 몸짓"이 궁금하다면, 이 시집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