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가볼만한 곳을 알려주는 주소록이 아니다. 삶을 대하는 방식과 세월을 견디며 창조하고 전승하는 태도, 그리고 세상의 소란 속에서 조용히 저항하며 살아가는 삶에 바치는 작은 찬사다. 물론 시간 여행을 위한 안내서이기도 하다. 여기 소개된 장소들은 모두 30년이 넘는 세월을 품고 있으며 어떤 곳은 수 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나 혼자 보물처럼 간직해 온 장소들이자 파리라는 도시의 가장 깊은 본질로 나를 데려다주는 귀한 공간들이다. p.5
세월의 흔적이 스민 오래된 건물과 낭만적인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고, 멋지게 차려 입은 파리지앵들이 자유롭게 활보하는 도시, 파리이다. 고풍스러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마레 지구, 세월의 흔적이 스민 오래된 건물과 예술가들이 열띤 토론을 벌였던 카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는 생제르맹 데프레, 그리고 몽마르트와 샹젤리제 거리, 센 강 등 직접 가보지 못했더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는 도시가 바로 파리가 아닐까. 파리라는 도시가 지닌 매력의 원천에는 물리적 아름다움이나 로맨틱한 풍경 이면에는 수십 년에서 수 세기 동안 쌓여온 시간의 깊이가 있다. 그런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를 온전히 소유할 수 있는 보물같은 책이 나왔다. 세계적인 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 마랑 몽타구가 파리의 곳곳을 아름다운 일러스트로 담았다.

파리는 아주 오래 전부터 나에게 로망인 도시라 언젠가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벼르는 곳이다. 얼마나 간절히 바랬던 지 나는 한번씩 파리에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항상 파리에 도착해서 설레 이는 마음으로 거리들을 둘러 보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에 꿈이 깨는 것이 문제긴 하지만 말이다. 이상하게 이 꿈은 잊은 말하면 한번씩 나를 찾아와서 나의 파리 열병을 다시금 되새겨 준다. 시간이 많으면 돈이 없고, 돈이 여유가 되면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간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이상하게 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뭔가 일이 틀어져서 가지 못했던 곳이 파리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을 보며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장소들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여기도 가봐야지, 이곳도 멋지다, 여기는 정말 예쁜데.. 하면서 포스트잇 플래그를 하나 둘 붙이다 보니 나중에는 너무 많아져서 수습이 안 될 정도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장소들이 많았다. 파리만의 독특한 아름다움에 한몫을 하는 장소부터 골목에 눈에 띄지 않게 자리잡고 있어 무심코 지나가기 쉬운 장소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마담 거리 48번지의 문을 열면, 나의 오래된 파리로의 여행이 시작된다. 방문을 알리는 은은하게 울리는 종소리, 갓 왁스칠을 해 삐걱대는 마룻바닥,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채 조용히 손님을 맞는 묵직한 수납장이 기다린다. 어린 시절, 파리에 나만의 부티크를 갖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 파리 6구 중심에 숨겨져 있던 이 공간을 처음 발견했을 때, 마치 내 보물들을 담아둘 보석상자를 찾은 듯한 감동이 밀려왔다. p.98
푸치니의 오페라, 플로베르와 빅토르 위고의 소설,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카르티에 브레송의 사진 속에는 낭만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파리를 낭만적이라고 상상한다. 파리를 배경으로 한 수많은 영화와 이야기들이 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는 바로 우디 앨런의 <미드나잇 인 파리>이다. 약혼녀과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온 할리우드의 작가인 주인공이 어느 밤 자정에 파리의 골목길을 헤매다 1920년대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헤밍웨이와 스콧 피츠제럴드와 파블로 피카소와 살바도르 달리를 만나게 된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그 영화는 그야말로 파리라는 도시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설레이는 작품이었다. 불꺼진 상점들 너머 길을 잃은 자정이 되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를 발견한다는 낭만적인 설정도, 위대한 작가들이 쉼쉬는 공간에서 그들과 함께 한다는 호사스러운 공상도 너무 매혹적이었으니 말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가 여는 파티에 참석하고,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헤밍웨이가 불쑥 조언을 해주며, 거트루드 스타인이 내가 쓴 글을 평가해준다니, 세상의 모든 예술가들이 꿈꿀 달콤한 상상이 아닌가. 그래서 나역시 파리라는 도시를 사랑한다. 아직 한 번도 가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나의 오랜 로망을 손에 잡힐 듯한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우선 책의 외관부터 굉장히 고급스럽다. 책배 3면을 모두 금장으로 장식했고, 앤틱한 느낌의 면지와 가름끈 색상, 두툼한 종이로 되어 풀컬러 일르스트를 돋보이게 해주는 내지, 그리고 백미는 마치 가죽으로 된 것처럼 느껴지는 표지의 재질이다. 파리의 고서점에 진열되어 있어도 좋을 만큼 화려하고 고급스럽다. 1~20구까지 나뉜 행정구역 구역별로 지도와 명소들을 정리해두었기에 파리를 방문하는 이들을 위한 가이드라고 봐도 좋겠지만, 책의 외관과 고풍스러운 일러스트들이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는 책이었다.
빵의 나라 파리에는 한 블록에 하나씩 빵집이 나온다는 말이 있어 파리의 동네 빵집과 셰익스피어앤컴퍼니를 비롯해 오랜 세월만큼의 시간을 간직한 고서점들도 가보고 싶었다. 이 책에는 관광객들이 익히 알고 있는 파리의 대표적인 명소를 비롯해서 골목 곳곳에 숨어있는 고서점, 태피스트리, 골동품 전문점, 파티스리, 문구점, 소품점, 화방 등 개성 넘치는 공간들 470여 곳을 만날 수 있었다. 초록색 가판대를 펼쳐 책을 진열한 헌책 노점들, 사탕가게를 떠올리게 하는 알록달록한 소잉숍, 세련된 우산가게, 클래식한 봉제 인형이 있는 장난감 가게, 옛 파리의 분위기가 묻어나는 심야식당, 들어서는 순간 무대가 펼쳐지는 마술 박물관, 동화 속 작은 성처럼 생긴 도서관, 앤티크숍을 닮은 인테리어의 디저트 전문점 등 직접 가보고 싶은 곳들이 가득했다. 각각의 장소마다 진짜 파리지앵이 알려주는 관점으로 소개글이 수록되어 있어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사진이 아니라 일러스트로 만나는 파리의 숨은 공간들이라 더욱 특별한 시간이었다. 세상 모든 도시 중 제일 눈에 띄면서도 가장 비밀스러운 도시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