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게다가 그대가 비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나의 책다운 긍지이기도 하다
한낱 물건일 뿐인 내가 진짜 살아 있는 존재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나 역시 기분이 좋다
종이로 된 정신인 우리는
이따금 우리 자신이 <덧없고 하찮은> 존재라고
느낄 때가 있다. p.53
페이지를 펼치면 한 권의 책, 그것도 살아 있는 책이 독자에게 말을 건넨다. 당신이 원한다면, 가장 가뿐하고 은근하고 간편한 여행으로 당신을 안내할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나를 읽고 있는 사람은 오직 그대뿐이고, 그대야말로 이 여행의 주인공이며, 나의 주인이라고, 좋은 책이란 그대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고. 아마도 이 책은 긴 여행을 거쳐 나 자신을 마주하게 해주는 여정을 보여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장을 넘기면 계약이 성립된다. 이제 나날의 근심 걱정을 잠시 잊어버리고, 되어 가는 대로 완전히 스스로를 내맡기면 된다. 책이 요구하는 사항은 꽤 긴데, 덕분에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충분하다. 그렇게 나를 어떻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고, 어떤 장소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하는 긴 당부의 페이지가 끝나면 여행이 시작된다.

첫 번째는 공기의 세계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정신의 힘으로 잠시나마 새가 된 것처럼 날개를 느끼고, 하늘을 날아다닐 수 있다. 구름 위에도 올라가 보고, 지구라는 행성을 구경해보기도 한다. 두 번째는 흙의 세계다. 대지로 내려와서는 자신만의 안식처를 짓는 시간이다. 집을 짓고, 집 안을 꾸미고, 내 서재에도 들어가본다. 세 번째는 불의 세계다. 이번에는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을 날아 오른다. 그곳은 온통 노란 불빛과 빨간 핏빛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적과 싸우고, 체제나 조직에 맞서기도 하고, 질병, 불운과도 싸운다. 마지막은 물의 세계다. 이곳은 온통 파스텔 색조로 이루어진 세상이다. 돌고래와 대화를 나누고, 잊고자 했던 기억을 시작으로 조상과 우주 그 이전으로 점점 과거로 향한다. 서로 다른 분위기와 감정, 이미지로 가득한 각각의 세계를 순차적으로 통과하면서 결국 마주하게 되는 것은 나의 내면이다.

지상의 어느 한 곳에서 <여행의 책>을 읽고 있는
그대는 분명히 현실 속에 있지만,
그대의 정신은
책 속에 투영된 꿈의 세계를 여행하고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들이 덧붙인다.
깨어 있으면서 동시에 꿈을 꿀 수 있게 되는 것,
인류는 어쩌면 그런 쪽으로
진화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p.127
오래 전에 <여행의 책>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실험적인 에세이가 4원소 리커버 에디션으로 새롭게 옷을 갈아 입었다. 독창적인 상상력의 세계를 만나기 위해 네 개의 세계를 네 가지 컬러의 내지와 글씨체로 만들었다. 공기, 물, 불, 흙 4원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유일무이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책이 너무 아름다워서 하나의 예술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양장본임에도 불구하고 가격까지 파격적으로 저렴하다.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체험을 하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공기의 세계는 산뜻한 초록색, 흙의 세계는 따뜻한 브라운, 불의 세계는 강렬한 레드, 물의 세계는 시원한 블루 컬러의 내지로 만들었다. 내지 컬러만 다른 게 아니라 각각의 세계는 글씨체도 각각 다르다. 그래서 하나씩 떼어내면 4권의 다른 책이 될 것만 같은 구성이다. 각각의 세계를 상징하는 컬러는 표지에도 고스란히 들어가 있다. 색감만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은 표지 디자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독보적인 상상력을 그대로 물질화시켜서 보여주는 북디자인이라니.... 작가만큼이나 디자이너에게도 박수를 보내주고 싶은 책이다. 담고 있는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이 가진 물성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러한 마음을 현실로 구현시켜 준 책이 바로 이 책이 아닌가 싶다. 독자에게 말을 건네고, 어떤 방식으로 책을 읽어야 하는지 직접 알려주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책이 우리를 데려가는 그 세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라니 거의 유일무의하지 않을까. 열린 책들의 디자인은 매번 감탄하지만,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단연코 손에 꼽을 만한 결과물이 아닌가 싶다. 책이 주는 물성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이 작품은 꼭 만나보길 권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