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동종 업계 연인과 함께 일하게 되었을 때 장점과 단점은 명확하다. 장점은 우리가 함께라는 것이다. 단점은 우리가 함께라는 것이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해 보겠다. 아침에 눈을 뜨면 우리는 함께 출근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쉬고 함께 퇴근한다(〈함께〉라는 말을 이렇게 많이 쓰니 게슈탈트 붕괴가 오는 것 같다). 일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직장 동료가 집에 가질 않는다. 그의 집이 우리 집이기 때문에, 우리집이 그의 집이기 때문에. 우리의 스케줄이 똑같기 때문에, 우리는 휴일도 함께다. p.71
두 사람이 함께 쓰는 열린책들의 에세이 시리즈 '둘이서'의 네 번째 책이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시인 이훤의 <고상하고 천박하게>,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의 <우리 같은 방>, 시인 백가경과 문학평론가 황유지의 <관내 여행자-되기>에 이어 네 번째 책은 영화감독 남순아와 영화감독이자 소설가인 백승화의 <이인삼각>이다. 이 시리즈는 독특하게도 네 권 모두 표지의 통일성이 없다. 대신 각각의 책들이 저자에 따라서 완전히 색깔이 달라진다. 하나의 책으로 묶인 두 저자의 케미도 흥미로운데, 이름을 보지 않고 읽으면 누구의 글인지 헷갈릴 만큼 결이 비슷해 각각의 글마다 페이지 하단에 저자 이름이 써 있다. 여러 모로 독특한 시리즈라 매번 챙겨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책인 <우리 같은 방>을 좋아한다. 이 책은 시인 서윤후와 한문학자 최다정이 함께 글을 썼는데, 두 사람은 동갑내기 친구로서, 글을 쓰는 동료 작가로서, 그리고 자신만의 방을 가진 이웃으로서 <방>에 관한 이야기를 사계절이 넘는 시간 동안 공들여 써냈다. 두 사람이 쓴 글을 교차하여 읽어도 좋고, 한문학자의 운치 있는 수필로, 시인의 담백한 에세이로 따로 읽어도 좋았다. 좋아하는 사람 <둘이서> 함께 쓰는 에세이 시리즈 '둘이서'는 라인업이 이미 10권까지 나와 있다. 다 기대가 되지만, 일곱 번째 시리즈에 김혜진, 최진영 작가의 이름이 있어 손꼽아 기다리는 중이다. 두 소설가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 서로의 관계에서 빚어내는 케미가 매우 궁금하다.

비단 친구와의 관계뿐만은 아닐 것이다. 연인 간에도 가족 간에도 그렇다. 우주의 섭리대로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잡아당겨야 한다. 관계라는 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억지스러운 비유라는 걸 안다. 하지만 누군가와 멀어지는 것이 우주의 섭리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진다. 흔한 안부 연락도 서로를 당기기 위한 중력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더 의미 있고 그럴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말이다. p.217
이번 작품의 두 저자는 영화인 X 영화인 커플이다. 동종 업계인으로서, 함께 살게 된 연인으로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닌 타인으로서의 두 사람이 함께 쓴 책이라 더 흥미로웠다.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허세였다며, 영화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알 수 없는 질투, 시기, 경쟁심으로 내린 충동적 선언이었다는 남순아 감독.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친구가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말에 어쩌다보니 휩쓸리고 만거다. 그런데 정작 영화를 하면서부터는 섣부르게 허세를 부리지 않게 되었다고. 작업을 할 때마다 매번 자신의 한계를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하니, 어쩌면 영화감독이 그의 천직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승화 감독은 언제나 집에 처박혀 친구도 없이 글만 쓰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데, 현장에서도 늘 영화보다 사람이 힘들었다고 말한다. 영화라는 매체의 특성상 과정 내내 필연적으로 수많은 사람과 지지고 볶으며 만들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가 영화감독을 하고 있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기도 한 것 같다.
두 사람이 어떻게, 왜 영화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그들이 영화판에 뛰어들게 된 비화도 재미있었지만, 동종 업계 연인이 하루 24시간 붙어 있을 때 갖게 되는 장단점에 대한 이야기가 특히 흥미진진했다. 영화 촬영현장의 안팎에 대한 이야기도 일반인은 쉽게 알 수 없는 내용들이 많아 인상깊게 읽었다. 두 저자 모두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기에 두 사람의 교환일기 같은 이 책은 공동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든 한 편의 영화처럼 읽히기도 한다. 파트 사이사이로 두 사람이 직접 <인생 영화란 무엇인가>와 <영화 꿈과 새벽의 촬영장>에 대해 대화를 나눈 시나리오가 부록처럼 들어 있기도 하다. 공포 영화 못 보는 감독의 공포 영화와 웃기지 않는 감독의 코미디 영화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하다면, 동종 업계 연인이 들려주는 공과 사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