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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옵서버
  • 로버트 란자.낸시 크레스
  • 18,900원 (10%1,050)
  • 2025-12-03
  • : 94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캐로 자신도 지금껏 얼마나 많은 선택을 해 왔는가? 그녀는 자신의 삶을 무수히 많은 가지를 뻗어 나가는 나무로 상상해 보았다. 가지 하나하나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었던 길을 보여 주었다. 만약 오빠의 장례식에서 엄마가 그토록 심한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캐로가 화를 참았더라면, 수십 년 동안 가족 간에 끓어오르던 분노가 폭발해 혼돈으로 치닫지 않았더라면?... 이런 선택들, 와이거트 박사가 ‘관찰’이라 부르는 그 수많은 결정이 삶을 전혀 다른 길로 이끌었을 것이다.”             p.105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어떨까? 영생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꽤 오래 전부터 있어 왔고, 문학적으로도 다양한 상상력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왔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책은 무슨 마법 약이나 유전자 조작으로 영원한 삶을 가능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영생은 이미 존재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낸다. 이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치밀하고도 완벽하게, 과학과 상상력의 교차 지점에서 탄생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을 해왔다. 내가 결정한 작은 선택 하나가 결국 삶의 경로를 완전히 바꾸어 버리거나, 전혀 다른 길로 이끌게 된다. 내가 가지 않은 길이 내 삶을 어떻게 달라지게 만들었을 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인생을 나무나 길에 비유하는 건 굳이 양자 물리학을 들먹이지 않아도 자명하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러한 경로가 실제로 존재하고, 다중 우주의 다른 분기에서 창조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다중 우주론에서는 하나의 행동을 실행한 사람에 의한 관찰을 포함해 어떤 행동이 관찰될 때마다 우주가 분기된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해온 수많은 선택과 결정이 여러 갈래의 다른 우주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이 작품 속 과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이 다른 우주의 분기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고, 그 의식이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고 그 안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그런 일이 실제로 가능한 걸까, 의심이 들만큼 이야기에 푹 빠져 들어서 읽었다. 분명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이런 일이 가능한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을 정도로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가 믿는 것은 단순한 환각일까, 아니면 그녀의 사고로 받아들이기엔 너무도 혁신적인 물리적 실체일까? 캐로는 더 이상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단 하나, 와이거트가 이 세션을 통해 이루 말할 수 없는 위안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줄리안이 말한 '세상을 떠나간 사랑하는 이'를 보면서, 혹은 보았따고 믿으면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리고 엘렌에게 필요한 것도 바로 이것이었다. 다시 삶을 살아갈 힘.

캐로는 침대 끝에 걸터앉아 오랫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p.317


올해는 양자 역학 100주년의 해로 양자 역학에 관련된 과학책들을 굉장히 많이 만나볼 수 있었다. 그 중에서도 단연코 혁신적인 책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SF 주요 4대상(네뷸러상•휴고상•존 W. 캠벨 기념상•스터전상)을 석권한 소설가 낸시 크레스와 21세기 아인슈타인이라 불리는 천재 과학자 로버트 란자의 합작으로 탄생한 이 작품은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과학적 사실과 정보를 담고 있다. 제목인 '옵서버'는 관찰자라는 뜻이다. 양자 역학의 핵심인 ‘관찰자 효과’를, 인간의 뇌와 의식에 적용한다는 대담하고도 아름다운 발상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과학적 지식이 전혀 없는 일반 독자들조차 매료시킬만한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관찰하기 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언뜻 쉽게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차근차근 이야기를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개념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그들의 논리에 공감하게 만들어 준다. 


미혼모 동생과 장애가 있는 조카를 홀로 책임지고 살아가는 신경외과 의사가 먼 친척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할아버지로부터 극비 프로젝트에 합류할 것을 제안받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렇게 카리브해의 고립된 섬, 정체불명의 연구소에서 뇌에 칩을 이식해 ‘죽음을 넘어선 세계’를 실험하는 극비 프로젝트가 진행된다. 죽음 이후에도 의식은 계속될 수 있을까? 우리가 현실이라 부르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다중 우주론의 관점에서 그 모든 가능성은 실제로 존재하는 '세계'인가? 시간이 과거에서 미래로, 선형적으로 흐른다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사실인 것일까? 양자 역학이 보여 주는 세계는 우리가 지금껏 알던 시공간에 관한 개념을 뒤집어 엎어 버린다. '관찰자'가 없다면 시간도, 공간도, 이 현실조차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작품 속 등장인물들은 저마다의 상실을 경험한다. 아내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어딘가에 존재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자신의 이론에 매달리는 물리학자의 마음을 허무맹랑하다고 치부할 수 있을까. 누구나 살면서 상실을 경험하고,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것을 지탱해 줄 수 있는 희망이라면 어떤 가능성이든 붙잡고 싶을 테니 말이다. 온갖 과학적 이론과 그 속에서 펼쳐지는 서사 자체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상실'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도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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