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을 쓰는 것만큼이나 취미 생활에도 진심인 걸로 유명하다. 달리기와 아날로그 레코드 수집이 그것이다. 그가 개인적으로 소장중인 1만 5천여 장의 레코드 중에 클래식 음악에 관한 이야기만 담은 에세이 <오래되고 멋진 클래식 레코드>를 아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는 재즈 레코드 188장에 대한 재즈 에세이 책이 출간되었다.
그가 워낙 재즈 애호가로 유명하기에 이번 책도 매우 기대하며 읽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번에 하루키가 엄선한 재킷들이 전부 전설적인 앨범 디자이너 ‘데이비드 스톤 마틴’의 작품이라는 것이다.

데이비드 스톤 마틴은 일명 DSM이라 불리는 재킷 디자이너의 전설이다. 레코드 재킷이 단순한 포장지의 역할에 머물던 시절부터 신선한 그림과 과감한 아이디어로 재킷을 음악의 첫인상이자 감상의 일부로 끌어 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처음에는 데이비드 스톤 마틴이 디자인한 재킷의 레코드를 의도적으로 모은 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컬렉션이 대략 백 장을 넘었을 즈음부터는 의식해서 그의 재킷 앨범을 모으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현재는 백팔십 장 정도의 DSM 재킷을 가지고 있고, 이 책에 소개한 것들은 모두 하루키가 개인적으로 소장하며 일상적으로 듣고 있는 LP판이다.

DSM은 평생에 걸쳐 광범위한 레코드 재킷을 디자인했는데, 클래식 음악부터 포크 송과 트래디셔널 블루스 등의 재킷도 다수 작업했다. 흥미로운 것은 북커버 작업도 꽤 했다는 거다. 윌리엄 포크너의 초판본 상당수를 디자인했다고 하는데, 매우 궁금해진다.
이 책에 DSM의 앨범 커버들이 굉장히 많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의 그림 특징을 잘 알 수 있었다. 펜을 사용해 잘 조여진 심플한 선이 중심이고, 거기에 담백한 단색이 곁들여진다. 당시에는 레코드 재킷에 많은 색채를 사용할 수 없었고, 기술적으로도 그다지 복잡한 색을 내지 못했다고 한다. 하루키에 따르면 한마디로, DSM의 화풍은 신선하고 참신한 동시에 '싸게 먹혔다'라고도 할 수 있다고.

비밥 음악의 상징이라 할 알토 색소폰 주자 찰피 파커의 별명이 '버드'라서 DSM은 파커의 레코드 재킷에 많은 새를 그렸다. 조니 호지스의 앨범 <컬레이츠>의 재킷에는 토끼가 가득하다. 역시나 호지스의 별명이 '래빗'이기 때문인데, 이 앨범에 있는 토끼는 다 해서 스물두 마리나 된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렇게 각 뮤지션별로 앨범을 정리해 재킷 디자인에 대해 코멘트를 덧붙이고, 해당 앨범에 대한 정보도 짧게 수록했다. 녹음 세션이 어떻게 이루어졌고, 밴드 편성이 어떠하고, 편곡을 어떻게 했는지 매우 전문가적인 설명이 이어지지만, 이미지 자료가 풍부해서 그런지 전혀 지루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하루키가 예술을 즐기는 방식과 태도가 글에 고스란히 배어나서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