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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네가 누구든
  • 올리비아 개트우드
  • 16,020원 (10%890)
  • 2025-11-07
  • : 81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다른 여자들은 너무도 편안해 보이는 그 따뜻하고 친밀한 관계에 자신이 만족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들과 친구가 된다고 해도 아무 의미가 없을 거라고 자신을 위로했다. 그런 여자들은 항상 떠난다고, 여름에 혹은 여름이 끝나자마자 영원히 떠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친밀한 관계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유일한 이유로 십 년 전에 있었던 일을 지목할 수 있다면 차라리 낫겠다. 그러나 그녀는 어렸을 때도, 다른 여자아이들과의 우정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로 여겨질 때조차도 친구를 사귀는 일에 서툴렀다.              p.39


미티는 캘리포니아 산타크루즈에 위치한 작은 해안가 마을에서 어머니의 친구 베델과 10년째 함께 살고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산 지 십년이 되었고, 베델의 나이가 벌써 일흔아홉이라 미티는 외출했다 돌아올 때마다 베델이 무사한지 확인한다. 여러 해 전부터 집들이 속속 매각된 후 공유 숙박시설이나 여름 별장으로 개조되었기 때문에, 미티와 베델은 동네에 남은 마지막 거주민이었다. 미티는 끊임없이 들고 나는 세입자들의 삶을 구경하곤 했다. 미티의 옆집은 온통 유리로 되어 있어 마치 벽이 없는 것처럼 보였는데, 지난 오년 간 비어 있다가 최근에 한 커플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기하학적 구조의 대저택에는 이국적인 가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미티는 새 이웃이 궁금해진다. 


테크 산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남자친구 서배스천을 따라 이곳에 온 레나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미모의 소유자였다. 정작 레나는 자신의 몸을 위해 노력한 적이 없기에 그 아름다움의 가치에 대해서도 무관심했지만 말이다. 빼어난 미모와 다정한 남자친구, 풍족한 생활. 조금의 걱정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레나의 고민은 자신이 서배스천을 만나기 이전의 삶이나 그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이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왜 자신의 삶에 온전한 기억이란 남자친구와 관계된 일뿐인지 레나는 늘 궁금하다. 그러다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오고 나서 레나는 허름한 이웃집에 사는 마티와 베델에게 호감을 느낀다. 자신이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는 여성 간의 유대를 보며 묘한 동경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질 수도 있었을 다른 삶을 떠올릴 때 레나는 천장 곳곳에 부착한 고리에 담쟁이 식물 화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아파트를 상상한다. 오래 방치된 촛불에서 촛농이 흘러내려 커피테이블을 어지럽히고, 침대는 엉망이며, 담요는 몸이 빠져나간 형상 그대로 헝클어져 있다. 샤워기에선 물이 계속 쏟아져 거실 창문이 수증기로 희뿌얘졌고, 책이 넘쳐나는 책장은 레나만의 기준으로 정리되어 있다. 레나는 자신의 집이 베델의 집처럼 모든 것이 과도하게 넘쳐나기를, 허술하고 풍족하기를 바란다. 코르셋의 끈처럼 바짝 당겨져 정교한 효율성이 지배하는 현재의 삶과 반대되는 삶.                  p.322~323


온갖 오래된 물건들로 가득찬 허름한 집에 사는 미티는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삶의 터전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그녀는 살아갈 목표도 재산도 없지만, 슬픔과 걱정은 많고, 밖게 나가기를 두려워한다. 타인의 삶을 오랫동안 관찰해온 그녀는 자신의 삶이 어딘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인형의 집'에 사는 레나는 아름다운 외모와 부유한 남자친구로 인해 화려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롭고 공허하다. 부족할 거 없어 보이는 그녀는 왜 아침마다 자신이 죽어 있다고 느끼면서 눈을 뜨는 걸까? 왜 하고많은 것 중에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은 것일까? 자신의 과거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한 여자와 자신의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한 여자가 만나 조금씩 친밀해지며 우정이 시작된다. 두 사람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두 사람을 둘러싼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속도감을 더해간다. 


이 작품은 두 권의 시집을 연이어 베스트셀러에 올린 올리비아 개트우드의 첫 소설이다. 굉장히 흡입력이 뛰어난 작품이었다. 시인이라 그런지 확실히 언어를 다루는 방식이 놀라웠는데,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고 싶은 문장들로 가득했다. 스릴러적인 요소가 서스펜스를 만들어 내고, 여성들 간에 이루어지는 동질감과 시기, 질투, 욕망에 관한 대담한 탐구가 놀라울 정도로 매혹적인 작품이었다. 미티는 타인이 자기를 묘사하는 최악의 방식을 상상하며 두려워했고, 레나는 어딘가 결함이 발견되면 자신도 가치 없는 존재로 여겨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했다. 미티는 스스로를 베델의 집에 가두었고, 레나는 남자친구에게 모든 것을 통제받으며 산다. 두 사람은 전혀 다른 것 같으면서도, 어떤 면에서 보면 비슷했다. 그래서 서로를 한 눈에 알아본 걸지도 모르겠다. 섬세한 심리 묘사들이 너무나 뛰어나서 누구라도 이 작품을 읽으며 미티와 레나에게 공감하고, 감정 이입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이렇게나 시적인 문장과 사색적인 통찰로 가득한 심리 스릴러라니...  그런데 이 소설이 데뷔작이라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은 출간과 동시에 웨스 앤더슨 제작사와 마고 로비 프로덕션의 참여로 영화화가 확정되었다. 미티와 레나라는 캐릭터를 어떤 배우가 맡을지, 스크린에서 펼쳐질 모습도 배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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