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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괴테는 모든 것을 말했다
  • 스즈키 유이
  • 15,300원 (10%850)
  • 2025-11-18
  • : 37,60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Die Liebe verwirrt nicht alles, sondern vermischt es.” 도이치는 눈앞에 있는 괴테의 명언을 독일어로 직역해 시험 삼아 소리 내어 읽어봤다. 그러자 갑자기 그 문장이 괴테스럽지 않게 느껴져서 놀랐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괴테가 한 말이라면, 18, 19세기 독일어를 언젠가 누군가가 영어로 번역했고 또 그것을 현대의 일본인이 독일어로 바꾼 셈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번에는 일본어로 옮겨봤다. 그러자 조금은 괴테스러워졌다.             p.44


도이치는 결혼 25주년 기념일에 딸과 아내와 함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축하를 하기로 한다. 도이치는 레드 와인을, 딸은 소다 칵테일, 운전을 맡은 아내는 논알코올 식전주를 선택했다. 딸이 마련한 축하 자리라 더 기분좋게 먹고, 마시며 즐기는 시간이었다. 도이치는 일본의 괴테 연구 일인자로 불리는 학자다. 꾸준히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등 실적을 쌓아 정교수가 되었고, 일본독일문학회의 회장도 맡고 있다. 삶에서 유일한 아쉬움이라면 영문학을 전공하는 딸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다. 식후에는 세 사람이 각자 고른 디저트를 먹으며 곁들여 홍차도 마셨는데, 얼그레이 티백 봉투 꼬리표 부분에 명언이 인쇄되어 있는 걸 발견한다. 딸이 고른 건 <실낙원>의 문구, 아내가 고른 건 <플라톤>의 문구였는데, 자신이 고른 건 우연찮게도 <괴테>의 문구였다.


“Love does not confuse everything, but mixes.”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그런데 분명 괴테라고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평생 괴테를 연구해온 자신조차 본 적 없는 문장이었다는 거다. 괴테 연구자답게 그는 문구의 원문을 찾아 문맥 속에서 정확히 뜻하는 바를 알아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낯선 문장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자신이 주장해 온 이론을 완벽하게 요약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명언의 출처를 확인하기 위한 도이치의 탐색은 어느새 인용과 진실, 언어와 믿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지적 모험으로 변해간다. 우선 144권에 달하는 방대한 바이마르판 전집을 바탕으로 괴테가 쓴 약 9만 3천 개의 단어 전체를 색인화하는 프로젝트인 '괴테 사전' 사이트에 들어가 검색해봤지만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괴테 전집을 다시 찾아 읽고, 만나는 학계 사람들마다 붙들고 물어 보아도 여전히 정확한 출처를 찾기란 어려웠다. 과연 이 문구는 출처를 찾을 수 없는 말은 거짓인가, 아니면 새로운 진실인가? 그야말로 하나의 문장이 삶 전체를 뒤흔들기 시작한 것이다. 도이치의 명언 찾기 여정은 마침내 가족들까지 함께 독일로 데려다 놓고, 그곳에서 그는 마침내 자신이 찾아 헤매던 답에 도달한다. 그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도이치, 괴테의 그 말 말이지, 자네는 그걸 찾을 수 있을게야. 그 말이 진짜라면."

도이치는 미나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 것 같으면서도 곰곰이 생각할수록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진짜'라는 건 무슨 뜻일까? '진짜 괴테의 말'인가? 아니면...... 도이치는 일단 독일어판 괴테 전집을 펼치고 명언을 찾아봤다. 그러자 전에 없던 의문이 떠올랐다. "사랑은 모든 것을 혼동시키지 않고 혼연일체로 만든다." 이건 '진짜'인가? 사랑은 모든 것을 각각의 모습 그대로 이을 수 있나?                  p.157


이 작품은 스즈키 유이의 첫 장편소설이다. 일본의 신인작가에게 수상하는 아쿠타가와상을 작년에 수상했는데, 굉장히 어린 나이인 23세이어서 더 화제가 되었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으로 연간 1,000권의 책을 읽는 독서광이라고 한다. 고전문학을 폭넓게 탐독해 온 이력을 바탕으로 30일 만에 쓴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실제로 저자의 부모님 결혼기념일 식사 중 홍차 티백에 적힌 명언에서 영감을 받아 집필했다고 한다. 01년생 젊은 작가의 소설에서 21세기 새로운 고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니 너무 궁금했다.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할 당시 '20대 초반의 젊은 청년이 썼다고는 믿어지지 않는 놀라운 통찰과 지식이 담긴 소설이다'는 심사평을 받았는데, 정말 그럴 수 있을지 살짝 의심도 들었고 말이다. 


작가가 짧은 기간에 쓴 작품인 만큼,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짧은 시간에 읽었다. 일반적인 소설처럼 스토리 위주로 진행되는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집중해서 읽을 정도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각종 문학적 장치와 인용으로 가득한 부분 또한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주인공이 학자이기 때문에 수많은 학술적이거나, 문학적인 인용들로 가득하다. 괴테부터 몽테르, 볼테르, 뉴턴, 니체, 보르헤스, 말라르메까지 그들이 했었던 말들 혹은 했다고 오해되는 말들까지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대한 인문학 지식들을 수많은 명언들로 풀어내는데, 그 과정이 전혀 딱딱하거나 지루하거나 난해하지 않게 읽힌다는 점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기도 하다. 중심 서사를 한 가족의 이야기로 가져가면서 주인공이 명언의 진위를 찾아 가는 과정을 그들의 삶 속에 고스란히 풀어냈기 때문에 독자들로 하여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니 왜 일본 언론은 그를 움베르토 에코, 칼비노, 보르헤스에 견주며 “일본 문학의 샛별”이라고 평했는지도 알 것 같았다. 그만큼 고전문학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토대로 쓰인 작품으로 느껴졌으니 말이다. 2000년대생으로는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문학계를 뒤흔든 젊은 작가의 놀라운 작품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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