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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메리 제인의 모험
  • 호프 자런
  • 17,820원 (10%990)
  • 2025-10-13
  • : 1,26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삶은 산 사람의 몫이다. 나는 살아 있었고, 수전과 조애나도 살아 있었다. 그 사실에 대해 나는 끝없이 감사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세상 전체가 멈춰야 할 것만 같다. 내 세상이 멈췄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계속 흐르고 사실은 나도 그렇다. 커피를 끓이고, 빈 깡통을 선반에 다시 올려두고, 텃밭을 쪼아대는 까마귀를 보고 쫓아낸다. 허리를 굽혀 호박이 얼마나 자랐나 들여다보고, 사고 싶었던 소 한 마리를 떠올리며 잠깐 마음이 설렌다. 그리고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든다.             p.202


세상 모든 이야기에는 주연이 있고, 조연이 있게 마련이다. 주인공의 서사를 위해 그외 다른 인물들의 서사는 축소되거나 생략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길에서 잠시 스쳐 지나가는 인물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는 것을. 누구의 시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된다는 것을 말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렇게 시작되었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 잠깐 등장했던, 주인공 헉이 좋아했던 메리 제인이라는 소녀가 이야기의 전면에 나섰다. 누구나 책에 담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고전의 재해석이다. 


사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메리 제인은 겨우 28쪽에만 등장하는 캐릭터이다. 소설 속에서 헉은 메리를 두고 '그녀는 내가 지금껏 본 어떤 여자보다 용감했다. 정말 용기로 가득한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호프 자런은 이 책을 너무 좋아해서 여러 번 다시 꺼내 읽곤 했는데, 읽을 때마다 메리 제인이라는 인물이 뭔가 석연치 않았다고 한다. 쉽게 속아 넘어가는 모습과 그렇지 않은 모습 사이에 간극이 너무 컸고, 순종적인 태도와 헉같이 대담한 소년이 그런 그녀에게 푹 빠진다는 설정도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 여자애,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라는 속삭임이 마음 한구석에서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때부터 박물관과 도서관, 유람선과 카누를 따라 진짜 '빨강 머리 아이'를 찾아 나서는 10년에 걸친 긴 여정이 시작된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 <제인 에어> 속 캐릭터를 주역으로 완전히 다른 작품을 써낸 진 리스의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를 읽으며, 고전이 끝내 들려주지 않은 이야기들을 스스로 찾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것도 <메리 제인의 모험>을 쓰게 된 계기가 된다. 그렇게 해서 '메리 제인'의 진짜 이야기가 세상에 나오게 된다. 




정적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피터 폰드 아저씨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아저씨가 살아온 이야기 말이다. 자라고, 몸집이 커지고, 나이가 들고. 그러자 내가 집을 떠난 이후로 만난 모든 사람, 내 삶에 겨우 하루이틀 들어왔던 사람들까지도 전부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애를 써도 당신에게 말해줄 수 없는 이야기. 책 한 권을 채울 정도의 이야기. 이 깨달음이 오래 남았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 내 삶은 달라졌다.            p.446


엄마와 외할아버지와 함께 살던 열네 살 메리 제인은 어느 날 도착한 한 통의 편지를 통해 긴 여행을 떠나게 된다. 실크 원피스 세벌이랑 찰스 디킨스 책을 짐으로 챙기고, 난생 처음 집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멀리 가서도 다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감해진 기분도 들었지만, 영원히 사라질 것만 같아 무섭기도 했다. 그렇게 배를 타고 긴 여정을 시작하며, 메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집을 떠나기 전에는 몰랐던 것들, 아무리 애써도 상상조차 되지 않는 것들을 직접 경험하는 어린 소녀의 드라마틱한 여정은 우리를 19세기 중반으로 데려간다. 세상의 좋은 면을 보려고 하는 선한 마음과 옳은 일을 하려는 의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 마인드가 페이지마다 햇살처럼 반짝이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랩걸>이라는 아름다운 과학책을 썼던 호프 자런의 첫 번째 소설이다.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 주인공 헉이 좋아했던 메리 제인이라는 소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 준다. 최근에 읽었던 퍼시벌 에버렛의 <제임스>에서는 역시 같은 원작에서 흑인 노예 '짐'의 시선으로 새로운 서사를 보여줬었는데, 고전의 현대적 재해석이 이번 작품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펼쳐질지 너무 궁금했다. 소설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미국 중심부를 관통하며 흐르는 미시시피강의 상류이다.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행을 떠나는 열네 살 소녀의 성장기는 과학자다운 역사 연구와 현장 답사로 더욱 생생하게 펼쳐진다. 고전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항상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과학자’로서, ‘여성’으로서, ‘여성과학자’로서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며 걸어온 호프 자런이기에 소설로서도 그 의지를 제대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면 대부분은 실제 19세기의 장소와 사건, 현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내내 미시시피강의 상류를 따라 메리와 함께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여행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었다. 자,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터질 듯한 희망으로 가득한, 이 눈부신 모험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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