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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책에서 시작한 불은 책으로 꺼야 한다
  • 박지훈
  • 17,820원 (10%990)
  • 2025-11-11
  • : 1,69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지만 매주 쏟아지는 온갖 장르의 신간을 아주 빨리, 출판사들이 동봉한 살뜰한 보도자료와 함께, 심지어 공짜로 받아보는 이는 많지 않다. 사무실에 쌓이는 신간들을 통해 나는 매번 저자들이 벌인 고군분투의 흔적을 발견하곤 했다. 크고 작은 흠집이 있더라도, 그 수준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더라도, 모든 책엔 하나같이 저자의 노고와 진심이 총총히 박혀 있었다. 그것들은 어딘가를 향해 끝없이 자맥질하다가 최후에 터지는 해녀들의 숨비소리 같았다.               p.66


독서란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다. 그래서 종종 모두가 열광하는 작품이 내겐 아무런 감동을 남기지 못하고,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는 작품이 내게는 심금을 울리는 특별한 작품이 되기도 한다. 책이란 작품성이 뛰어나고, 문학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위대한 고전만 가치가 있다고 믿는 사람도 있을 것이며,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각자의 취향이 다르기에 우리는 타인의 독서 습관에 대해 궁금해한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책을 읽는지, 내가 읽었던 책을 다른 이들은 어떻게 읽었는지 알고 싶어 한다. 독서 에세이가 끊이지 않고 계속 출간되는 것 또한 그러한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번에 만난 책은 매주 수백 권의 책을 마주하던 일간지 출판 담당 기자의 독서 에세이이다. 그는 20년 가까이 신문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며 사회부, 문화부, 종교부에서 일했는데, 그 중에서도 문화부에서 출판 분야를 담당했던 몇 년을 가장 행복했던 시기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서평과 에세이의 경계에 있다'는 곽아람 작가의 추천평처럼, 국문학을 전공했고, 책을 읽는 일이 직업이었던 저자의 글이라 그런지 잘 읽히지만 짜임새 있고 깊이가 있는 독서 에세이였다. 문학부터 사회과학, 경제경영, 철학, 역사, 과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 서른 네 권에 대한 저자의 서평을 만날 수 있었다. 수전 올리언의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김연수의 <7번국도>, 호프 자런의 <랩 걸> 등 이미 읽었던 책들이 나올 때는 반가웠고, 프란스 드 발의 <동물의 생각에 관한 생각>, 아누 파르타넨의 <우리는 미래에 조금 먼저 도착했습니다>, 미치오 카쿠의 <인류의 미래> 등 몰랐던 책들은 찾아서 읽어 봐야겠다고 메모해 두었다. 




“좋은 책은 무엇인가” 묻는다면, 많은 답변을 늘어놓을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을 흔들거나, 생각을 자극하거나, 통찰을 제공하는 작품이 좋은 책이라고. 좋은 질문이 담기거나 좋은 답이 실린 책, 혹은 그 둘을 모두 가진 것이 훌륭한 작품이라고 규정할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좋은 질문은 무엇이고 좋은 답은 어떤 것일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질문이 훌륭할수록 답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다. 답이 없더라도 생각할 무언가를 무더기로 던져주는 것도 때론 좋은 책의 조건이 되는 셈이다. 독자는 이런 책을 보면 독서 이후 찾아오는 온갖 질문들을 사유의 광맥으로 삼게 된다.               p.157


저자는 이 책에 실린 글 대부분을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에 머물던 일년 여의 시간 동안 쓴 것이라고 한다. 어떤 주제를 떠올린 뒤, 그에 걸맞은 책을 찾아 읽고, 나름의 감상이나 논평을 곁들인 글들을 쓰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주로 작업을 한 탓에 한국어로 된 종이책을 욕심껏 구해 읽을 수 없었다는 점이 아쉬웠다고 하지만, 한국에서였다면 늘 시간은 부족하고, 본업이 아닌 일에 마음을 쏟아 붓기가 어려웠을 테니 이만큼의 원고도 쓰기 어려웠을 거라고. 아마도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그럴 것이다. 직업이 아닌 취미로 하는 일에 온 마음을 다하기란 현실적으로 결코 쉽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게 쓰인 글이었고, 책과 삶이 고스란히 겹쳐져 있는 글이라 더욱 공감하며 읽었다.


출판 담당 기자는 매주 나오는 신간 가운데 '금주의 책'이겠거니 싶은 작품들을 골라 독자에게 소개하는 일을 한다. 출판면 마감은 매주 수요일이었고, 전주 수요일부터 차주 화요일까지 들어오는 신간은 200권 안팎이었다. 2개의 지면에 비중 있게 소개할 수 있는 책은 많아야 서너 권에 불과했기에, 주마간산 수준으로 책들을 훑어본 뒤 최종작들을 선정해 읽고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취미이던 독서로 돈까지 벌게 됐으니 건성으로 볼 순 없었지만, 항상 시간이 부족했다. 홍수처럼 쏟아지던 활자 속에서 허우적대다 간신히 마감한 뒤 돌아보면 또다시 책상엔 눈사태가 난 것처럼 한가득 신간이 쌓여 있곤 했다니.... 애서가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꿈의 직장처럼 느껴졌다. 물론 그 속에서 나름의 현실적인 고충이 있었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출판 기자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너무 재미있었고, 책에 대한 감상 또한 잘 정제된 문장으로 쓰여 있어 공감하며 읽었다. 책을 읽을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세상에는 좋은 책이 너무 많고, 그 책들을 다 읽기엔 시간이 늘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며 또 다음에 읽을 책을 골라본다. 책에 대한 책을 읽고 나면, 찾아서 읽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늘어나서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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