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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보다
  • 김남숙 외
  • 14,400원 (10%800)
  • 2025-10-30
  • : 1,200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뭇잎들이 바람을 맞아 흔들거렸다. 수천 개의 잎이 흔들거리는 속에서 새벽하늘에 뜬 별들이 잠깐 보였다가 잎에 가려졌다가 했다... 식물들을 제외한다면 나는 죽은 남자와 단둘이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과연 식물들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걸까?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왜 생기지 않는 걸까? 궁금할 법도 한데 그렇지가 않았다. 그보다는 내 몸 위로 자기 몸만 한 무늬의 그늘을 드리우는 잎사귀들, 곤히 잠들어 있는 식물들에게 궁금한 것이 있었다.              - '김채원, '별 세 개가 떨어지다' 중에서, p.67


석 달 정도 가족들과 연락이 없었던 할아버지가 걱정이 된 손녀들이 할아버지가 홀로 가꾸고 있는 종묘원을 방문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종묘원은 반원형의 이글루 모양으로 온실 같은 곳이라기보다는 작은 야생 숲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할아버지는 그곳을 정성껏 가꾸며 혼자서 재미있는 걸 하고 있었고, 안심이 된 두 사람은 할아버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그곳에서 누군가의 '발'을 발견하게 되는데, 나무도, 식물도 모두 조용한 그곳에서 묻힌 채 발견된 죽은 남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산희는 이제 막 이사를 마친 참이다. 집 안은 포장 테이프를 뜯지 않은 상자들, 책장에 엉망으로 꽂힌 책들과 옷이 담긴 커다란 비닐봉지등으로 가득했다. 정리를 조금 하다가 지금 이 집에서 뭐가 더 필요한지 목록을 챙겨 본다. 인터넷 연결도 아직 안 했고, 화장실 휴지와 암막 커튼 등이 필요했다. 급한대로 필요한 물건을 사러 익숙한 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시 낯선 집으로 돌아온다. 더 늦기 전에 청소기라도 돌려야 할 것 같았는데, 도무지 청소기가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전에 살던 집에 두고 온 것 같다는 생각에 다음날 퇴근하면서 들러 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집에 새로 온 세입자는 자신과 똑 닮아 있었다.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란 산희는 자신이 자신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자신과 똑 닮아 있는 상대와 마주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산희와 똑같이 생긴 그는 대체 누구일까. 




산희는 점점 더 혼란스러웠지만 꾹 참고 커피를 마시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산희의 눈길을 피하지 않았다. 산희는 자신의 시선을 정면으로 받아치는 그의 얼굴을 보면서 마치 거울을 보고 있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머그잔을 든 그의 손가락 마디마디까지도 산희의 그것과 똑 닮아 있었다. 그가 범죄를 저지른다면 경찰이 자신을 지목할지도 모르겠다는 우스꽝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지문까지 똑같은 거 아니야?

「저 진짜 모르세요? 우리가 너무 똑같이 생긴 것 같은데요.」

         - 한유주, '이사하는 사이' 중에서, p.174~175


다섯 명의 소설가가 하나의 주제로 함께 글을 쓰는 열린 책들의 '하다 앤솔러지' 세 번째 책이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평소 하는 다섯 가지 행동 즉 걷다, 묻다, 보다, 듣다, 안다, 라는 동사를 테마로 진행되고 있다. 그 세 번째 책 <보다>에는 김남숙, 김채원, 민병훈, 양선형, 한유주 작가가 참여했다. 다섯 편의 이야기 중에 김채원 작가의 <별 세 개가 떨어지다>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따뜻하고 코지한 분위기도 좋았고, 은근슬쩍 벌어지는 미스터리도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오키나와 모토부에서 있었던 일을 그린 <모토부에서>, 하얀 손님을 자신의 트럭에 태우게 된 한 운송 기사의 이야기인 <하얀 손님>, 홋카이도의 왓카나이 소야곶의 수평선 너머를 상상해보는 <왓카나이>, 이사를 나온 뒤 내가 살던 집에서 나와 똑 닮은 사람과 마주하게 되는 기묘한 상황을 그린 <이사하는 사이> 등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누구나 자신이 보고 싶은 것을 보며 살아 간다. 같은 상황을 함께 겪더라도 완전히 다르게 기억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각자 자신이 보고자 하는 것만 바라보기 때문이다. 이 책에 수록된 작품 속 인물들은 글이 써지지 않는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며 그 이면을 상상하고, 살아갈 이유를 찾기 위해 도착한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자신과 똑같이 생긴 너무 닮은 사람과 우연히 마주하게 되면서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서로가 서로를 바라본다. 우리가 바라보고, 지켜보고, 살펴보는 것에 관한 다섯 편의 이야기들은 각자 작가들의 개성으로 가득하다. 잘 안 읽히는 작품도 있었고, 좋았던 작품도 있었는데 그렇게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앤솔러지만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반투명한 트레싱지로 된 표지가 아름다운 이 시리즈는 책배와 위, 아래에 프린트까지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진다. 시리즈 네 번째 책인 <듣다>가 벌써 나왔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한 작가들이 참여해 기대하는 중이다. 빨리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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