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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오나님의 서재
  • 작은 텃밭이 내게 가르쳐준 것들
  • 캐시 슬랙
  • 17,010원 (10%940)
  • 2025-10-30
  • : 545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자연은 나를 위로하고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여기에 신은 필요 없다. 내게 필요한 모든 위로는 자연 안에 있다. 나의 도덕적 나침반도 자연에서 비롯된다. 자연이야말로 진짜 현실이다. 초자연 따위는 무시하자. 중요한 것은 지구고, 자연이며, 생명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일부임을 기억하는 순간, 마음이 치유되기 시작한다.            P.84


언젠가 나이들면 시골에 집을 짓고 살 거라고, 혹은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상상 속의 그 집에서는 텃밭을 가꾸는 풍경이 항상 포함되어 있었다. 끼니 때가 되면 텃밭으로 나가 그날 텃밭에 무엇이 열렸는지 보고 그걸 수확해 그 채소들로 할 수 있는 요리들을 생각해 보는 거다. 그렇게 채소를 씻고, 다듬고, 조리하는 과정은 조록조록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싱그러운 채소의 향을 맡고, 도마에 칼이 탁탁탁 부딪히는 감촉을 느끼는 시간이다. 물론 도시에서도 요리를 할 때 비슷한 과정을 거치기는 하지만, 마트나 시장에서 구입한 채소는 직접 재배해서 수확한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물론 시골살이라는 것이 마냥 낭만적인 일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선뜻 불편한 삶을 시작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텃밭이나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삶에 대한 책이 나오면 꼭 챙겨 보는 편이다. 이번에 만난 책도 그래서 궁금했다. 번아웃으로 인해 불안과 우울로 힘들었던 저자가 텃밭에 나가 밭을 일구고 채소를 키우면서 마음의 치유를 얻게 된 과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런던의 대형 광고 회사에서 글로벌 마케팅 전략 책임자로 일하며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빠르게 승진했고, 지미추 구두를 신고 비행기로 세계를 누비며 잠시라도 블랙베리 휴대전화가 몸에서 떨어지지 않았던, 성공한 인생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피도 눈물도 없는 세계였고, 10년 넘게 스트레스를 받아왔으니 번아웃은 너무나도 예상된 결과이기도 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는 인지 기능에 문제를 만들었고, 감정적으로도 붕괴하기 시작했으며, 신체에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삶이 완전히 무너져 버리자, 어쩔 수 없이 힘들게 쌓아온 커리어를 포기하게 된 것이다. 그후 1년 가까이, 차 한 모금 마시지 못한 채 소파에서 꼼짝하지 않고 시간만 보내다 뜻밖의 곳에서 회복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하지만 자연은 내게 삶의 고삐를 다시 넘겨주었다. 저녁거리가 없어 빈 바구니를 들고 아무 계획 없이 채소밭으로 올라가 케일, 양배추, 비트, 볼로티 콩을 수확해 돌아올 때면 내 머릿속은 요리에 대한 아이디어로 가득 찼다. 수확도 요리도 다 내가 했다. 그 모든 일을 해내는 사람이 바로 나였다... 나는 바로 이 점 때문에 먹거리를 직접 기르는 일이 정신 건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정원을 가꾸거나 시골로 나갈 때와는 다른 점이다. 여기에는 주체적인 삶의 태도가 있다.              P.147


텃밭 농사가 저자를 치유한 이유는 뭘까. 산책도 있고, 개를 키우는 것도 있고, 문학, 혹은 정원 가꾸기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채소 기르기가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준 구체적인 이유는 뭘까 너무 궁금했다. 이 책은 코츠월드의 사계절을 따라가며 6월부터 시작해 달마나 한 장씩 구성되어 있다. 여름비 덕분에 짙은 초콜릿색을 띠는 흙에서 식물들이 하늘을 향해 쑥쑥 자라는 6월, 온 천지에 생명이 가득 넘실거리며 매일매일 수확되기를 기다리는 7월, 게으름을 피워도 수확물이 넘쳐나 손이 바빠지는 8월, 여름 수확과 가을 수확이 잠시 겹치는 짧지만 찬란한 순간을 만날 수 있는 9월 등 각각의 달마다 계절의 풍경과 텃밭의 모습들이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어 읽는 내내 힐링되는 듯한 기분이었다. 


빈 요구르트 병에 무턱대고 씨앗을 뿌리고 임시로 만든 텃밭에서 울퉁불퉁 못생긴 당근을 돌보며 보낸 어느 한 해의 이야기는 채소밭이 어떻게 한 사람의 삶을 구해줄 수 있었는지에 대한 마법같은 드라마이기도 하다. 손으로 흙을 만지고 작은 씨앗을 심고, 땅에서 자란 채소들을 수확해 요리를 한다는 것. 사계절을 따라 제철 식재료로 요리를 하는 일은 그 재료를 길러낸 자연과 다시 만나는 일이기도 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냉장고 안, 부엌, 장바구니, 혹은 저녁 식탁 위에 존재하는 자연을 만난다는 것. 채소 재배와 요리 모두 저자에게는 자연과의 연결 통로가 되어주는 일이었다. 그렇게 채소밭은 조용히 저자를 우울의 침잠에서 건져주었다. 자연과 이어주고, 자신과 타인을 돌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먹거리를 직접 생산한다는 것이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 일이라는 말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혼자 힘으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한 한 끼를 마련해 낸다는 것의 의미가 현실적으로 확 와닿는 시간이었다. 이렇게 고요하고 특별한 방식으로 얻는 힐링이라니, 자연에 둘러싸여 자연을 받아들이는 삶에 대한 로망이 한층 깊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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