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야기를 지탱해야 할 중요한 배경은 극 중에 아예 그려지지 않는다. 그보다는 그리지 않음으로써 그려진다. 관객의 상상에 모든 걸 위탁한다. 애니메이션은 시간에 구속되는 미디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끝내려면 '생략'과 '편집'이 필요하다. '무엇을 그릴지'가 아니라 '무엇을 그리지 않을지'가 중요해진다. 시간제한이 큰 단편 작품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덧셈이 아니라 뺄셈의 발상을 택했을 때 '중경의 배제'는 필연이 된다. 이는 신카이가 추진한 표현의 효율성과 경제성 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p.71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언어의 정원>, <스즈메의 문단속> 등의 작품으로 만나온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모든 작품을 해설한 책이다. 문예평론가 에노모토 마사키는 초기의 작품부터 최신작까지 신카이 감독의 애니메이션을 영상문학으로 분석한다. 또한 각종 매체에 소개된 인터뷰, 대담 등을 모아 각 작품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했다. 후반부에는 <날씨의 아이>와 <스즈메의 문단속>에 대한 신카이 마코토의 최신 인터뷰도 꽤 긴 분량으로 담겨 있다.
유화를 그리는 어머니의 영향을 받으면서 어머니의 책장에서 책을 골라 읽었던 소년 시절부터 신카이 마코토라는 재능이 탄생한 배경도 흥미로웠고 그가 디지털 애니메이션 독립 제작을 시작한 과정을 다루고 있어 인상깊게 읽었다. 첫 번째 출발이 되었던 <별의 목소리>의 메이킹 스토리, 새로운 제작 환경에서 만든 첫 장편 영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제작 환경을 최소한으로 했던 <초속 5센티미터>, 지브리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 대한 오마주 <별을 쫓는 아이>, 관객이 보고 싶어 하는 것과 감독이 주제로 삼고 싶어 하는 것의 조화에 대해 고민했던 <언어의 정원>,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관객과의 대화를 통해 만들어낸 인기작 <너의 이름은.>, 이야기에 적합한 캐릭터를 찾기 위해 고심했던 <날씨의 아이>, 현실에서 일어난 거대한 사건을 다루고 있는 <스즈메의 문단속> 까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전 작품을 글로 읽어 내는 시간은 애니메이션으로 감상하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의 감동을 주었다.

내가 사는 곳을 좋아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요. 그래서 적극적으로 도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도쿄의 풍경을 아주 좋아합니다. 사람이란 장소에 추억이 쌓여야 그곳을 좋아하게 됩니다. 좋아하지 않던 곳도 친구와 수다 떨며 돌아오거나 좋아하는 여자와 나란히 걸었다면 특별한 장소가 되잖아요. 그런 경험을 거쳐 서서히 도쿄가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추억과 기억이 엮이면 장소가 다르게 보인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그때 느낀 점을 이후 모든 작품에 관통하는 철학 비슷한 원체험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p.315~316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들은 애니메이션 장르를 크게 좋아하지 않던 일반 관객들도 쉽게 즐길 수 있다. 가장 최근 작인 <스즈메의 문단속>만 하더라도 국내 관객수가 558만이니 그 대중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신카이 마코토는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이유없는 죽음이라는 결과에 대항하기 위해 이른바 재난 3부작을 만든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그리고 <스즈메의 문단속>이다. 각각 서로 다른 형태의 재난을 소재로 하고 있는 이 작품들은 견딜수 없는 고통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준다. 삶이란 반복되는 상실에 익숙해지는 과정이고, 우리는 그 상실감을 끌어안고 또 살아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간절한 마음이 이뤄내는 기적이라는 희망과 낙관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의 작품들이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책은 과거와 현재를 왕복하는 시간 구성과 시골과 도시의 대조적인 배치, 고층 빌딩과 전차에 대한 집착 등 신카이 작품의 표현에서 핵심이 되는 각종 모티프와 '세계를 긍정하는 의사'에 집약되어 있는 그의 이념, 커뮤니케이션과 디스커뮤니케이션, 혹은 교류와 단절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최대 주제를 짚어낸다. 아름다운 하늘과 구름 같은 자연, 전봇대와 전깃줄, 건물 등의 생생한 인공물 묘사로 상징되는 배경 미술에 대한 분석과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뭔가를 잃어야 한다는 이율배반의 딜레마 등을 문학적 시점에서 평론하고 있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신카이 마코토는 자신은 타고낭 능력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독서 취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하드한 물리 이론으로 버무려진 그렉 이건의 작품들을 좋아한다고 하는데, 최근에는 류츠신의 <삼체>도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SF의 상상력과 함께 자신만의 애니미즘과 판타지가 융합된 비주얼 세계가 그의 작품 세계를 이루는 바탕이 되어 준다고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너의 이름은,>이라는 작품을 가장 좋아하는데, 각자 한 편씩은 좋아하는 작품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한다면 이 책도 놓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