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관한 당신의 구체적인 질문에 대해 결론을 내자면, 오늘날 불평등의 높은 수준에 관해 당신이 언급한 수치는 맞습니다만, 100년 전에 불평등은 이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200년 전에는 그보다 더 심했고요. 그러니까 길게 보면 진보가 이뤄진 것입니다.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진보는 언제나 엄청난 정치적 투쟁과 사회적 운동을 필요로 했습니다. 진보는 계속 이런 식으로 이뤄질 겁니다. 좋은 소식은 이 싸움을 이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과거에도 이긴 적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p.12
세상이 평등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그렇다면 왜 부와 권력은 불평등을 허락하는 걸까. 불평등은 왜 문제가 되는 걸까. 바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2024년 5월, 세계적인 두 사상가 토마 피케티와 마이클 샌델이 파리경제대학에서 만났다. 프랑스 파리경제대학교 교수 토마 피케티와 미국 하버드대학교 정치철학과 교수 마이클 샌델은 각각 <21세기 자본>과 <정의란 무엇인가>로 국내에서도 꽤나 친숙한 지식인들이다. 두 사람은 이 자리에서 ‘평등과 불평등, 진보’를 키워드로 열띤 토론을 펼쳤는데, 그것을 편집한 것이 바로 이 책이다.
피케티는 평등과 불평등 문제에 낙관적이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불평등이 있지만, 길게 보면 세계는 더 평등한 쪽으로 움직여왔다고 말이다. 샌델은 재분배와 탈상품화에 관한 하나의 사고 실험을 제안한다. 불평등이라는 문제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식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그렇게 피케티와 샌델은 불평등의 세 가지 측면인 경제적 불평등, 정치적 불평등, 사회적 불평등을 다각도로 조명하면서 이야기를 나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오늘날 심화된 격차 문제를 짚어내며 평등하고 지속가능한 사회를 위한 현실적 대안을 모색한다.

그래서 학력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끝내 용인되어서는 안 되는 편견입니다. 우리가 다른 형태의 편견들을 떨쳐버렸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이지요. 사람들이 학력주의를 생각 없이, 별로 미안한 기색도 없이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노동의 존엄성이 중요합니다. 이것은 사회민주주의 정치를 재생하는 데 중요한데요, 노동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 곧 문제는 재분배로 해결할 수 있는 불공정만이 아님을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p.91
샌델은 사회적, 경제적 삶의 지나친 상품화를 걱정해야 할 이유로 두 가지를 꼽는다. 지나친 상품화는 돈을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경제적 불평등 속에서 사람들이 교육과 의료, 정치적 발언권과 같은 기본재에 접근할 수 없게 차단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판매할 상품으로 여긴다면 그것을 구매할 여력이 없는 이들의 접근권을 저해하고, 그 재화의 의미를 격하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피케티는 고등 교육 분야의 상품화에 대한 샌델의 말에 동의하며 의견을 보탠다. 20세기에 탈상품화가 작동한 핵심적인 이유가 바로 교육과 의료 분야라고 말이다. 교육과 의료 분야에서 탈상품화가 잘 작동한 것은 사람들이 이 분야에서 일하도록 하는 내적 동기가 금전적 동기나 이윤 동기에 의해 파괴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 외에도 두 사람은 기부 입학은 왜 문제가 되는가? 능력주의는 어째서 위험한가? 소득과 임금 격차는 어떻게 사회적 격차를 불러오는가? 부자들과 거대 기업의 조세 회피를 가능케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민자 배척과 외국인 혐오 정서는 어디서 비롯되는가? 우리는 진정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는가? 등 지금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을 살펴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피케티가 샌델이 쓴 <당신이 모르는 민주주의>와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고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도 매우 흥미로웠고, 샌델이 존 롤스의 <정의론>을 읽을 때마다 늘 혼란스러웠다고 그에 대해 언급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 자체는 매우 짧은 분량이라 부담없이 시작했는데, 그 내용이 그야말로 액기스만 담아낸 것이라 여러 번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었다. 불평등 전문가인 정치경제학자와 정치철학자의 만남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만나보자. 불평등을 줄이고 평등한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두 석학의 생생한 목소리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