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생은 짧다. 기억이 본질적으로 덧없는 것이라서 우리 인생이 훨씬 더 짧아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기억 덕분에 과거를 잊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인간의 뇌는 경험의 저장고 이상의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얼마나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는지는 뒤에서 살펴보겠다). 망각은 기억의 실패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을 헤쳐나가며 이해할 수 있게 뇌가 정보를 중요도에 따라 정리하는 과정이 낳는 결과다. 우리가 의지가 깃든 선택으로 망각을 관리하는 데 더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면, 미래로 가져갈 풍요로운 기억을 직접 선별해서 정리할 수 있다. p.52
우리는 왜 방금 전 일을 잊어버릴까? 어떤 기억은 왜 잊히지 않고 계속 떠오를까? 우리가 어떤 일은 기억하고 어떤 일은 잊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누구나 한 번쯤 뭔가를 찾으려고 움직이다가 내가 뭘 찾고 있었는지 잊어 버리거나, 몇 시간 전에 먹은 식사 메뉴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음악은 기억했던 경우가 있을 것이다. 당시에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던 경험이 나중에는 기껏해야 희미한 조각으로만 남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항상 기억의 작동 방식이 궁금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뭔가를 잘 기억하지 못해서, 기억을 잊어버린다는 사실 자체에 좌절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차란 란가나스는 '곧이곧대로 기억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니 '왜 자꾸 잊어버리는가?'를 묻지 말고, '왜 기억하는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에 기여하는 다양한 메커니즘은 생존을 위한 과제에 맞춰 진화해왔다. 우리가 특정 정보를 잊어버리는 것은, 필요할 때 필요한 정보를 신속히 활용할 수 있도록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를 매길 필요가 있기 때문인 것이다. 따라서 사진처럼 정확하고 고정적인 기억보다는, 맥락에 맞춰 유연하게 변하는 기억이 우리에게는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기억은 돌에 단단히 새겨진 것이 아니라서, 우리가 방금 배우거나 경험한 것을 반영해 갱신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언뜻 듣기에는 말이 안 되는 소리 같겠지만, 기억 갱신의 촉매는 바로 기억을 떠올리는 행위 자체다. 기억을 떠올릴 때 우리는 수동적으로 과거를 재생하지 않는다. 기억에 접근하는 것은 '재생'과 '녹화' 버튼을 동시에 누르는 것과 비슷하다. 머릿속으로 과거를 다시 더듬어볼 때마다 현재의 정보가 함께 따라가서 기억의 내용을 미묘하게 바꿔놓곤 한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경험을 한 번 떠올릴 때마다 그 기억 속에는 바로 지난번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의 잔여물이 가득 퍼져있다. p.234
이 책은 오랫동안 우리가 믿어왔던 기억에 대한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뒤집으며, 기억의 메커니즘을 심층적으로 탐구한다. 심리학 및 신경과학 교수인 차란 란가나스는 뇌의 구조와 원리 연구에 25년 이상 매진해왔다. 저자는 우리가 인생의 경험을 모두 기억할 수 없는 것은 기억이 본질적으로 선택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경험 중 극히 작은 일부만이 우리의 하고, 그 근거가 되는 것이 바로 ‘맥락’과 ‘도식’이라는 틀이라고 말이다. 그 장소에서 나는 소리, 색깔, 냄새 등을 통해 우리는 과거 그곳에 왔을 때의 기억들을 다시 붙잡을 수 있다. 이렇게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 대한 감각을 '맥락'이라고 부른다. ‘도식’은 일종의 정신적인 틀로, 반복되는 패턴이나 구조를 이용해 우리가 익숙한 환경에서 쉽게 정보를 정리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맥락과 도식에 따라 정리를 해보자면,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망각은 기억력이 나빠져서가 아니라 오히려 뇌가 의도한 효율적인 정보 처리 매커니즘인 것이다.
기억의 실체에 대해 탐구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로운 책이었다. 인상적인 부분이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기억을 단순한 연상의 저장고로 보는 대신 인간이 서로 아주 다른 두 종류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는 견해가 재미있었다. 이는 토론토대학에서 심리학을 가르치던 톨빙 교수가 제시한 것으로 일화기억과 의미기억으로 구분했다. 의미기억이란 정보를 학습한 시기나 장소와 상관없이, 세상에 대한 지식이나 사실을 떠올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일화기억은 일종의 '정신적 시간여행'이라고 부르며, 기억으로 인해 우리가 마치 과거로 되돌아간 것 같은 의식 상태에 놓인다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의식이 정신적인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개념에 대해 전부터 관심이 많았던 터라,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을 읽으며 기억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기억하고 학습할 수 있을지에 대해 뇌과학, 심리학을 넘나들며 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기억과 망각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되어 기억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해주는 기억의 놀라운 세계를 만나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