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참 유행이던 ‘힐링’이란 단어가 독서하는 내내 떠올랐다. 실은 이 단어를 좋아하지 않지만, 개인사와 사회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을 좀 달래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언젠가 겐자부로의 글을 읽고 힘을 얻었던 것처럼, 이번엔 제임스 헤리엇의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에서 위로를 얻었다. 나는 동물을 좋아하지만 키우고 싶지는 않다. 다른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무거운 일이다. 잠깐 강아지를 맡아 키웠고 금세 사랑하게 되었지만 중형견이 뛰놀 수 있는 집에서 데려 갔다. 그래서 반려동물을 데리고 산책하는 이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앞선다.
『이 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생물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책소개에서 읽은 번역가의 글 때문이었다. 요크셔 시골 수의사 이야기가 우리나라에서 세 번이나 번역·출간되는 이야기. 이것이 무슨 연이란 말인가? 또 그만큼 대단하단 말인가? 그렇게 읽게 된 책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았다. 매번 별점 앞에서 고민하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 막 수의대를 졸업한 신출내기 의사가 암소의 출산을 돕는 장면에서 극한 직업 체험기인가 싶었다. 무사히 일을 마친 뒤, 털털거리는 고물 차를 타고 언덕에 오르다 차에서 내린 그가 땀과 오물에 흠뻑 젖은 옷을 벗어 던지고 자연을 마주하는 장면. 아주 감동적이었다.
평범한 일상에서 공감, 그리고 감동을 끌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빤하다고 할 수도 있을, 헤리엇의 시골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모든 생물’을 다루고 있다. 요크셔에 사는 가축, 반려동물과 그들을 돌보는 인간들, 헤리엇의 상사 시그프리드 파넌과 그의 동생 트리스탄, 그리고 농부와 농장주들. 밤낮 없이 울리는 호출에 응대하는 수의사들, 젊은이들의 고충에 껄껄 웃는 농부들, 엉망진창인 장부를 보며 눈을 치켜 올리는 새 회계담당자. 새벽 긴급왕진을 다녀오느라 꼴이 말이 아닌 헤리엇을 보며 그의 독특함을 논하는 술꾼들, 헤리엇이 사모하는 헬렌, 그들의 엉망진창 데이트.
귀엽고도 사랑스럽다. 물론 그런 이야기뿐만 아니라 가슴 뭉클하고도 또 한없이 인간적인 에피소드들도 있다. 넉넉지 않은 생활이지만 늙고 병든 개를 돌보려는 노인, 자기가 가고 나면 개와 고양이는 어쩌나 걱정하는 노인…. 매번 까탈스럽게 굴던 이가 어쩌다 한 번 베푼 아량이 시험에 오르자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선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든다. 의사가 고치지 못한 암소가 민간요법 덕에 일어나 뛰어다니는 모습, 말이나 소의 뒷발에 차여 헉헉거리는 의사를 가리키며 배를 잡는 농장주들, 자신의 동물을 콘테스트에 내보내려 막무가내로 우기는 사람들, 버터와 소시지를 나누는 인심….
가장 감동적인 에피소드는 역시 출산이다. 어미의 자궁에서 자리를 잘못 잡은 송아지의 머리를 찾아 혀를 만져 살아 있나 확인하는 장면. 할짝할짝 손가락 끝을 핥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작은 생명. 어떻게든 살려내려 애쓰는 수의사에 응답하여 양수를 뱉어내고 건강하게 선 모습은 또 얼마나 큰 감동인가. 백 년 전을 배경으로 하지만 어쩌면 우리네 삶은 어떤 원형을 반복하고 재생산한다는 느낌이 든다. 매일을 생과 사의 기로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이겨내는 것에서는 삶에 대한 찬미를 읽었다. 젊은 수의사의 소명의식에서 피어난 감동, 다음 시리즈를 기대하게 하는 순수한 기쁨. 정말 ‘힐링’이 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