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서재

a garland for his head
  • 야만인을 기다리며
  • J. M. 쿳시
  • 11,700원 (10%650)
  • 2019-02-28
  • : 977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문명, Sid Meier's Civlization〉이라는 게임이 있다. 기본적으로 영토 확장에 기반한 세력 게임으로, 목표는 내가 선택한 문명이 다른 문명과 대결하여 승리하는 것이다. 쿳시의 《야만인을 기다리며》를 읽으며 떠올린 이 게임이, '문명'이란 무엇인지 아주 간단히 나타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무력을 통해 지배 문화가 퍼져 나갈 공간을 확장하는 것. 쿳시는 이 작품에서 문명과 야만이라는 명제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문명의 허구성에 대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훗날 《추락》에서 보여준 바와 같이 등장인물의 계급이 전복되면서 벌어지는 시각의 반전을 통해 인간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도 보여준다.


제국의 정복지, 야만인들의 땅이지만 제국민들이 함께 거주하는 곳을 다스리는 치안 판사. 그는 오랫동안 이 곳에 머물며 나름대로 '야만인'에 대한 이해를 키워왔다. 제국의 영광을 위해, 일종의 '성전'을 연상시키는 전쟁을 하러 온 졸 대령은 무고한 이들을 잡아와 고문하고 전쟁을 일으키려 했다는 거짓 자백을 받아낸다. 이 와중에 고문받던 한 사람이 숨을 거두고, 치안 판사는 분노를 숨기지 못한다. 졸 대령이 전쟁을 하러 자리를 비우자, 치안 판사는 죽은 이의 딸로 보이는 여인을 데려와 보살핀다. 약 5개월 후, 이 여인을 고향으로 데려다주기 위한 여행을 다녀온 그는 야만인들과 내통했다는 죄로 감옥에 갇히고, 고통을 받게 된다.


치안 판사는 눈이 멀고, 몸이 불편한 이 여인에게 집착한다. 집으로 데려와 흙이 엉겨붙고 상처투성이인 발을 정성껏 씻긴다. 목욕 시중은 발에서 온몸으로 늘어나고 오일을 발라 정성껏 마사지도 해준다. 이 친밀한 관계는 지극히 성애적인 관계를 연상시키지만 치안 판사는 이 여인을 정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여인의 반질반질한 두 눈이 자신을 거리낌 없이 비춰내고 또 그의 고요한 모습이 자신을 튕겨낸다고 느낀다. 나는 이 늙은 남자의 욕망이 솔직하면서도 지극히 교묘하고 또 약탈적이라고 생각했다. 은밀하게 펼친 유혹의 덫에 여인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면서도 그 모양새가 자발적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치안 판사의 속내는 문명화, 개화시켜주겠다는 제국주의자들의 어떤 시혜적인 태도와 겹쳐진다. 내가 너희를 친히 밝혀주리라. 서구 문명이 교육이라는 탈을 쓰고 그들 문화의 근간인 그리스도교를 전파시킨 것과도 마찬가지다. 너희 스스로 믿고 이 우수한 문화를 전파하게 하리라. 하지만 정작 지배 문화는 피지배 문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미니어처, 미니언을 만드는 것이다. 결국 지배 문화를 강요하는 모습은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어르고 달래는 것이 치안 판사의 모습이요, 폭력을 통한 방식이 대령의 모습이다. 평화로울 때와 어지러울 때, 둘 다 제국의 모습이다.


결국 여인은 치안 판사의 권유를 뿌리치고 떠나버린다. 여인을 갖기 위해 그가 위험을 감수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훗날 치안 판사가 생각하기를 그녀는 자신의 허위를 꿰뚫어보았기에 떠났을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녀의 문화도 충분히 '문명화된 사고'를 전수했을 지도 모른다고. 그녀가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지극히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어쩌면 자신이 그런 가능성을 배제했을 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자신이 모른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말하지 않는다고 모르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치안 판사 그 자신은 야만인을 꽤 안다고 자신했는데도.


치안 판사는 주둔지에 돌아와 또 다른 야만을 목격한다. 자신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강탈한 문명이란 이름의 야만을. 폭력 앞에서 법은 무력해진다. 이성이란 평화로울 때나 기능하는 것이다. 야만인들은 감옥에서 행복했다. 따뜻한 밥이 나오고, 꽤 안락한 잠자리였기 때문이다. 반면 같은 대우를 받은 치안 판사는 수치를 느낀다. 과연 이것이 박해받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치안 판사는 떠나 보낸 여인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나쁜 건 없는 법이다."(56쪽) 하지만 그의 이성과 존엄성은 육체에 내려앉는 폭력 앞에서 서서히 깨어진다. 임레 케르테스의 《운명》에서 표현된 것처럼 그릇이 깨어지면 영혼이 견딜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그에게 남은 근성은 그를 고문하는 것을 유희적으로 여기던 만델에게 약간의 죄책감을 심어주는데 성공한다. 고문은 아프고, 나는 살고싶지만... 그대는 어떻게 그런 일을 하면서 일상을 영위할 수 있는가? 이렇게 다른 이에게 고통을 주고 어떤 정화의식 같은 것이 필요없다는 말인가? 치안 판사의 선택과 그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결국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하는 명제에 도달한다. 인간성이란 무엇인가? 동양에서는 '의'로 표현되는 수오지심. 그른 일을 부끄럽게 여기고 마땅히 옳은 일을 해야한다는 정의로움. 치안 판사의 선택에는 누구나, 심지어 동물마저도 이 정의로움을 타고난다는 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오랜 시간, 치안 판사가 관심을 가졌던 폐허. 그 유적을 발굴하며 찾아낸 문서들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을까? 한 차례 폭풍이 불고난 뒤 그 발굴 현장은 다시 모래로 뒤덮였다. 수비대가 떠난 곳도 서서히 몰락해 폐허처럼 변해간다. 어쩌면 그들의 제국도 모래가 쓸어 담아 그 흔적을 지울지도 모른다. 야만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결국 이 땅을 지키는 것은 그들이 될 것이다. 이미 그들의 제국보다 더 오래 전에 그 땅을 지배했던 또 다른 제국, 그들의 후손이기 때문에.


  • 댓글쓰기
  • 좋아요
  • 공유하기
  • 찜하기
로그인 l PC버전 l 전체 메뉴 l 나의 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