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드 창의 세계
여흔 2021/01/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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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인생의 이야기 (양장)
- 테드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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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0) - 2020-01-28
: 12,018
<숨>을 읽었을 때 받았던 강렬한 충격을 잊을 수 없어서 내친김에 <당신 인생의 이야기>도 읽었다. (과작하는 작가라 두 권만 읽어도 테드 창 전작을 읽었다고 말할 수 있다는 이점이...) 역시나 숨가쁘게 우다다 다음 내용을 눈으로 뒤쫓게 됐다. 간혹 이해가 안되는 물리학 법칙이 나와도 적당히 흐린 눈 하며 읽을 수 있다. 그냥 재밌으니까.
각 단편들이 품고 있는 세계를 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 읽었던 판타지 소설이 떠오르기도... 일흔 두글자의 명명법으로 움직이는 자동인형(골렘)이라던지 천사의 강림으로 인한 재앙과 은총이 일상화된 세계라던지...이세계((異世界) 안에서 사회의 불평등은, 신에 대한 믿음은 어떤 식으로 구현될까? <- 요런 식의 철학적인 질문을 테드 창은 던진다.
그런데 소설이 던지는 철학적인 물음..이런 걸 다 차치하고서라도 그냥 그의 상상력은 위로가 되고 너무 아름답다. <네 인생의 이야기> 는 지구에 방문한(?) 외계 생명체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는 언어학자 루이즈의 시점으로 쓰여진 이야기다. 대개 말을 음성화 한 지구의 언어와 달리 헵타포드의 언어는 문장 자체의 형상이 의미를 한번에 보여주는 의미 표시 문자다. 따라서 헵타포드들은 페르마의 최단 시간의 원리에서 최종 목적지를 알고 수면에서 굴절하는 빛처럼, 결과를 최소화하거나 최대화하는 최종 목적지를 이미 알고 있는 채로 문자 언어를 구사한다. 결말을 알면서 인생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루이즈는 이러한 헵타포드의 언어를 연구하며 그들의 사고 방식을 어느 정도 체화하게 되고, 자신 인생의 이야기까지 이해하게 된다. 다 읽고 나면 뜬금없다고 여겨지던 소설 첫 머리의 시점과 문체가 이해된다. 이제는 독자도 헵타포드 식의 언어를 알고 있는 상태니까. 여하튼 너무너무 아름다운 상상력이다.
언어적이지만 비음운적인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개념은 언제나 나를 매료했다. 내게는 부모님이 두 분 모두 청각장애인 친구가 있었다. 그는 미국식 수화를 쓰며 자랐고, 내게 영어 대신 수화로 생각하는 일이 자주 있다는 얘기를 했다. 나는 수화로 코드화된 사고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마음속 목소리 대신 마음속 손 한 쌍으로 사유를 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지 궁금해하곤 했다.- P203
인류와 헵타포드의 조상들이 맨 처음 자의식의 불꽃을 획득했을 때 양측은 모두 동일한 물질세계를 지각했다. 하지만 지각한 것에 대한 해석은 각자 달랐다. 세계관의 궁극적인 상이함은 이런 차이가 낳은 결과였다. 인류가 순차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킨 데 비해, 헵타포드는 동시적인 의식 양태를 발달시켰다. 우리는 사건들을 순서대로 경험하고, 원인과 결과로 그것들 사이의 관계를 지각한다. 헵타포드는 모든 사건을 한꺼번에 경험하고, 그 근원에 깔린 하나의 목적을 지각한다. 최소화, 최대화라는 목적을.-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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