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에 읽은 책을 이제야.
올해 읽은 가장 압도적인 소설. 소설을 읽고 포어가 쓴 다른 모든 소설이 궁금해졌으나 아쉽게도 그는 과작을 하는 작가인 듯하다.
9.11 테러로 아버지를 잃은 아홉 살 소년 오스카가 상실의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아버지의 흔적을 추적하는 이야기다. 오스카는 아버지 방에 있던 꽃병 속에서 열쇠를 발견하는데, 그 열쇠가 아버지가 남긴 수수께끼라고 여긴다. 그래서 열쇠가 들어있던 봉투에 적혀 있는 '블랙(black)' 이라는 단어를 단서 삼아, 뉴욕에 사는 모든 '블랙'을 만나러 8개월 동안 도시를 헤맨다. 오스카의 이야기와 함께, 드레스덴 폭격을 겪었던 그의 할머니와 할아버지 이야기가 진행된다. 끔찍한 재난으로 인한 거대한 상실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아홉 살 소년의 시선으로 상실을 이야기한다는 접근법 자체가 훌륭하다. 오스카는 자신의 고통을 언어화할 수 없어 끊임없이 떠드는 것을 택하고, 그의 할아버지는 입을 다무는 것을 택한다. 둘 다 나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도 않는데 그들의 고통이 절절하게 전해진다. 특히 오스카.. (나는 어린 화자가 등장하는 소설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왔다. 조숙한 척 하지만 미숙함이 드러나고야마는 화자들) 뉴욕에 있는 모든 블랙을 찾겠다는 오스카의 무모한 여정이 아홉 살 소년이 떠올릴 수 있던 아버지의 죽음에 다가가는 한 방편이라는 것. 오스카는 이렇게 말한다.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알아야 해요. 그래야 아빠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더 이상 상상하지 않게 될테니까요."
결국 작가가 상실을 견뎌내는 방법으로 상상력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도 좋다. (실험적인 기법의 여러 페이지들로) 그 상상력이라는 거.. 결국은 소설 그 자체를 뜻하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들은 어쩔 수 없나봐. 서사의 힘을 믿고야 마는 것. 빔 벤더스가 <베를린 천사의 시>에서 영화를 이야기를 존속시키는 매체로 제시하는 것처럼. (잘 모르는데 수업시간에 배워서 써먹어 봄 ㅎㅎ)
(+) 사실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올해의 책은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 일수도. 크라우스와 포어는 부부다. 신기하게 두 책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무척 유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