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흉노에 대해 처음 알게 된 건 어릴 적 신라 김씨 왕족의 조상이 흉노족이었다는 이야기를 본 것부터였다. 물론 그 주장에는 문제점들이 많아서 하나의 설 정도로만 남아있지만 그 주장 자체는 나에게 흉노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내 관심은 신라와 흉노의 관계에 대한 것에 그쳤고 흉노족 자체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정재훈 교수가 흉노에 대한 서적을 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기회에 흉노에 대해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책을 구하게 되었다.
흉노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다이나믹했다. 흉노는 당시 막강했던 통일제국 한나라와 싸우는데도 밀리기보다는 오히려 한나라를 이길 정도로 강력했다. 흉노와 한나라의 전투는 가히 두 제국의 충돌이라고 할만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한나라가 흉노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면서 흉노의 영향력도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흉노는 남북으로 분열하고 군소 세력화되면서 강력했던 흉노 유목제국의 역사는 막을 내리게 된다.
이 책은 국내 연구자가 쓴 최초의 흉노 통사이다. 이전에도 흉노에 대한 책은 국내에도 여럿 출판되었지만 대개 외국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것이거나 고고학을 다룬 책이었다. 그래서 국내 연구자가 쓴 이 책의 출판은 의미가 깊다. 게다가 저자는 그동안 돌궐과 위구르 등 북방 유목민족의 역사를 수십 년간 연구한 중앙아시아사 전문가이기 때문에 책 내용에 대한 전문성과 신빙성도 높다고 할 수 있다. 책에 있는 수많은 주석은 지금까지 저자가 얼마나 열심히 흉노를 공부하고 연구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주석에는 다양한 사료와 국내외 연구자들의 논저들이 적혀있어서 독자가 조금 더 알고 싶을 때 충분히 좋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의 또 다른 좋은 점 중 하나는 중요한 부분을 볼드체로 해놓은 점이다. 내용 중 핵심적인 단어나 문구를 굵은 글씨로 적어놓아서 책을 읽으면서 어느 부분이 중요한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에 부록으로 흉노 대선우들의 목록과 계보도를 첨부하여 대선우가 어떻게 승계되었는지 따로 안 찾아봐도 되게 해놓은 점도 장점 중 하나다.
다만 이 책에도 아쉬운 점이 존재한다. 먼저 고고학을 다룬 부분이 적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전반전인 내용이 문헌을 중심으로 흉노의 역사를 다룬 것이다. 고고학 유적지 지도나 유물을 사진으로 첨부한 것을 제외하면 사실상 고고학적인 부분은 없다시피 하다. 그런데 고고학적인 내용이 부족한 것에도 저자의 의도가 담겨있다고 한다. 출판사 편집자의 글을 보면 저자인 정재훈 교수는 최근의 흉노사 연구가 고고학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문헌 사료가 너무 소홀히 여겨지는 것에 아쉬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사료를 좀 더 엄밀히 해석해보고자 책을 썼기 때문에 문헌 중심의 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흉노의 고고학적인 부분을 알고자 한다면 이 책 대신 흉노 고고학을 다룬 다른 책이나 논문을 보는 것이 좋다.
또 다른 아쉬운 점은 책 뒤에 참고문헌이 없다는 것이다. 보통 전문성이 있는 책들은 책 뒤에 부록으로 참고문헌을 수록해놓는다. 그런데 이 책에는 그런 부분이 없다. 물론 책 본문에 각주가 많이 있어서 주석에 적혀있는 책과 논문들을 보면 되기는 하다. 하지만 주로 어떤 문헌들을 참고 했는지 한 눈에 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참고문헌 부분이 없어서 한 눈에 살펴보기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그리고 이 책에는 3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흉노 제국의 역사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후에 흉노족이 세운 국가인 전조나 북하 등의 역사는 다루지 않는다. 그래서 흉노의 모든 역사를 알 수 있지는 않다는 점이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하지만 만약 그 부분까지 다 다뤘다면 책이 방대 해지는데다가 ‘유목제국사’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았을 테니 이해는 된다.
이처럼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 아쉬운 점들을 상쇄할 정도로 이 책은 훌륭한 책이다. 게다가 현재 품절/절판이 아닌 국내 흉노사 책은 이 책이 유일하니 흉노를 알고 싶은 사람들은 이 ‘흉노 유목제국사’를 구입해서 읽어보길 권장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