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거란전쟁』은 길승수 작가가 쓴 역사 교양서다. 길승수는 KBS에서 방영하는 동명의 사극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원작 소설(고려거란전기)을 쓴 사람이다. 이 사람이 사학과 교수 같은 전문가는 아니지만 역사학과 출신이고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많은 조사와 탐구를 한 분이기에 이 책의 수준에 의심은 가지 않았다.
[내용]
이 책은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여요전쟁 이전 동아시아의 시대 상황, 2장은 거란의 1차 침입, 3장은 즉위 전 현종의 일생과 거란의 2차 침입, 4장은 거란의 3차 침입 이전의 상황, 5장은 거란의 3차 침입과 귀주대첩에 대한 이야기다.
나의 여요전쟁에 대한 지식은 교과서에 나오는 것보다 조금 더 알고 있는 수준이었다. 거란이 총 3차례 침입했으며 1차 때는 서희가, 2차 때는 양규가, 3차 때는 강감찬이 활약했다는 것과 그 세부적인 내용(소손녕과의 회담, 흥화진전투, 귀주대첩 등) 조금만 아는 거였다. 그래서 300쪽이 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 알게 된 사실들이 많았다. 그 중 인상 깊었던, 또한 의외였던 내용도 꽤 있었다.
난 소손녕이 거란의 장수였다고만 알고 있었는데 그가 거란 황제의 부마였다는 것과 간통하다가 처형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새로웠다.
그리고 고려 성종이 소손녕의 딸과 결혼할 뻔했다는 것도 의외의 사실이었다. 이 둘이 혼인하기로 했지만 성종이 일찍 죽어서 소손녕의 딸이 고려에 오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고려사 열전을 찾아보니 성종의 부인으로 소손녕의 딸이 나오지는 않았다. 만약 제대로 성사되어서 거란인 왕후가 등장했다면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궁금해졌다.
또한 나는 현종이 나주로 피난을 가는 상황에서 위협을 받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했는데 이 책에 나오는 내용은 상상 이상이었다. 현종이 개경을 나간 직후부터 시도때도 없이 위협을 받았고 지방 호족들의 대우는 도저히 일국의 국왕에게 하는 대우라고는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한편 2차 침입 때 양규의 활약상은 놀라웠다. 소수의 군사로 다수의 거란군들을 여러 번 이기고 장렬한 최후를 맞은 양규의 활약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거란이 3번 침입한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흔히 2차 침입과 3차 침입이라 불리는 전쟁 중간에도 거란이 여러 번 침입했었고, 귀주대첩으로 거란군이 참패를 당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후에도 거란은 고려를 다시 침입했었다.
마지막으로 3차 침입 당시 거란군이 성 정복을 포기하고 바로 개경으로 진격하다가 여러 번 패배를 당했고 결국 위기에 몰리자 회군했다는 것도 의외였다. 지난 침공들과 다르게 거란군이 지속적인 패퇴를 당했다는 것은 몰랐던 사실이었다.
[장점과 특징]
이 책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장점은 읽기 쉽다는 것이다. 여러 사료를 가지고 상세하게 설명을 하는데도 문체가 딱딱하지 않고 마치 이야기를 듣는 듯 편하게 읽힌다. 신라 말에서 현종의 죽음까지 수백 년의 역사를 단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스토리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서술해놨다. 거란의 침입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여진족 해적의 침입 같은 것들을 적어놓으면서도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만든 것을 보면서 이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책이 쉽게 읽히는 이유가 작가의 스토리텔링 능력 때문만은 아니다. 이 책은 다양한 그림과 지도를 곳곳에 배치해놓아서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일러스트레이터를 통해 여러 상상도를 그려놓아 특정 상황에 대한 상상이 잘 되게 해놨고, 병력 배치도도 추가하여 당시 군대 편제에 대해 알 수 있게 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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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많은 양의 지도를 넣어 놓은 것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일반적으로 역사 글을 읽을 때, 특히 전쟁 파트에서는 여러 지명이 등장하기에 지리 지식을 모르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책 내용에 나오는 지역의 위치나 군사들의 이동 경로 등을 아주 많은 지도를 통해 보여주고 있어서 당시의 지리 지식을 전혀 몰라도 이해할 수 있게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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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역사책들은 지도를 넣어놔도 몇 개 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지도가 없는 책도 존재한다. 그런데 이 책은 지도가 나오고 페이지를 몇 장 넘기지 않아도 지도가 또 나오는 수준이라 지리를 몰라서 이해를 못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다.
이 책에는 주석이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교양서들은 주석이 없는데 여기에는 주석이 있어서 근거 사료가 무엇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교양서이기에 각주 형식이 아니라 책 거의 맨 뒤에 있는 미주 형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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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참고문헌도 책 맨 뒤에 적혀있다. 여러 논문과 연구서들이 적혀 있는 참고문헌을 보며 이 작가가 고려거란전쟁에 대해 많은 공부를 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참고문헌에 KCI 등재지, 등재후보지 여부가 적혀있는데 이걸 왜 적었는지는 모르겠다. KCI에 등록된 참고문헌 형식을 복붙한 것이 아닌가 한다.)
[총평]
이 책은 고려거란전쟁, 즉 여요전쟁에 대한 교양서로서 훌륭한 역할을 하는 책이다. 스토리텔링 및 다양한 그림과 지도로 관련 지식이 없는 사람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주석과 참고문헌이 있어서 더 깊게 탐구하고자 하는 독자에게도 도움이 된다. 고려거란전쟁을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네이버 부흥 카페의 서평 이벤트를 통해 책을 받고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