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행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은 어떤가요?
저에게 여행은 어릴 적 보석상자같이 반짝이는 느낌입니다. 맞벌이로 바쁘셨던 부모님, 그중에 기동력을 갖추셨지만, 가족보다는 친구가 우선이셨던 아빠로 여행은커녕 가족나들이도 변변히 가본 적이 없었어요.
어릴 때 친구들이 가족여행을 다녀와서 이야기 할 때의 부러움, 나도 크면 꼭 여행 가야지 했던 다짐, 여행을 준비하고 떠났을 때의 설렘과 기대감이 담겨있는 보석상자.
그 보석상자를 올해는 열어보질 못하고 있어요.
언제부터인가 여행이란 말이 사치처럼 느껴졌습니다. 코로나19가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오기 전까진 주말마다 또는 남편의 휴가마다 우리 가족은 떠나는 것이 일상이었는데.
이번엔 어디 갈까? 국내로 해외로 돈과 시간만 주어지면 여행 다니던 우리 가족이 올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외출을 했던 나날들. 심지어 지금은 다른 도시에 있는 친척을 만나기도 어렵게 되자 여행이 그립다 못해 일상이 갑갑하게 느껴졌어요.
일상 속에서 떠나는 특별한 여행
이런 아쉬움을 일상 여행가는 일상 속에서 떠나는 여행으로 특별하게 다가옵니다.모임과 공간, 책을 소중히 여기는 지나 작가와 비효율적인 여행은 딱 질색인 뼛속까지 공대인인 제임스 작가가 일상 속에서 여행을 떠나 여행 파트너처럼 우리에게 말을 걸어오는 듯합니다.
가본 곳도 있고, 이런 곳도 있었어? 인 장소도 있고, 아! 가보고 싶다…. 엉덩이를 들썩이게 하는 다양한 장소들을 각각의 콘셉트에 맞게 소개하고 있어요.
글을 쓰는 작가들이다 보니 주로 책과 글 쓰는 공간 위주의 여행지들이지만 우리가 지나쳤던 골목 사이에 숨어있던 보석들을 잘 닦아서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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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저는 맥주가 간절히 생각났어요.
누군가 여행을 갔다와서 들려주는 듯한 착각에 편안하게 등을 기대고 맥주를 홀짝이며 책을 넘기고 싶었어요. 냉장고를 뒤져보니 맥주는 일찌감치 마셔서 없고 아쉬운대로 막걸리와 커피땅콩을 씹으며 일상 여행으로 빠져듭니다.
밤이 아니라 낮이었다면 커피가 생각났을거 같아요.
책을 읽고 마인드맵을 하면서 진한 커피 생각이 났거든요. 책과 커피는 떼놓을 수 없는 연인처럼 같이 소개되어 있어요. 심지어 원두까지!
책을 읽다가 어설픈 마인드맵을 슥슥 그려봅니다. 14곳의 여행지들과 내가 가보고 싶은 곳들을 함께 그려 넣었어요. 기억이 나지 않는 부분은 다시 책을 뒤적거리고 기억에 선명한 곳은 눈을 감고 떠올려가며 빈곳을 채워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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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여행가 마인드 맵
내가 가보고 싶은 일상 여행지
개인적으로 저는 인천의 끝에 있는 해당화 사진관에 가보고 싶어요. 아빠의 보물 1호였던 카메라를 몰래 들고나와 잃어버렸던 그 날 뒤로 만져보지 못했던 아날로그 카메라를 다시 만나고 싶어요. 사진기 대여와 현상료까지 2만원에 해주신다니 남는 것이 있으실까 걱정되는 금액입니다. 아이들과 인천 골목을 구경하며 36컷의 필름에 소중한 순간을 꼭꼭 담아오고 싶어요.
그리고 페잇퍼 만화& 그림 책방에도 가고 싶어요. 남편과 만화로 이어져 결혼까지 했는데 그 핏줄은 못 속이는지 아이들도 만화를 아주 좋아하거든요. 하지만 가끔은 아이들 없이 남편과 만화책을 낄낄거리며 보고 싶어요. 저는 고양이 맘마를 시키고 남편은 제 강요(?)로 어제 뭐 먹었어 라면?을 시킬 거에요. 만화 심야식당에 나왔던 가스오부시를 뿌린 고양이 맘마에 매니저님이 내키는대로 끓여주는 라면은 환상적인 궁합일 것 같거든요.
남편과 연애했을 때 기분으로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입니다.
마지막으로 가보고 싶은 곳은 담양이에요.
담양하면 떠오르는 녹색의 일렁임!
일상 여행가에서 소개한 대나무 숲을 보고 이거다 싶었거든요. 담양은 특별한 장소, 잊을 수 없는 경험의 파트에서 2번이나 소개되어 있어요.
폐창고를 리모델링해서 재탄생한 담빛 예술창고는 창고가 주는 폐쇄성과 답답함을 폴딩도어로 상쇄시킨 곳이라고 해요. 빈티지한 감성을 주는 낡은 사물들과 여백들…. 성수동 대림창고 외 다른 창고 개조 카페처럼 담빛 예술창고도 여백의 미를 살린 곳이에요. 여백이 주는 느긋함과 여유로움은 일반 카페에선 받을 수 없는 넉넉한 느낌을 준다고 해요.
30년 넘게 양곡창고로 쓰이다가 문화 재생 프로젝트를 통해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변신한 담빛 예술창고는 대만 가오슝의 보열예술 특구가 생각납니다.
가오슝 부둣가에 줄지어 있던 창고들을 이렇게 예술적으로 사용할 수 있구나! 감탄과 충격을 받았던 보얼 예술 특구.
담빛 예술창고는 보얼 특구보단 조용하고 정적이지만 담양의 물빛과 문화예술이 인문철학과 함께 꽃피우고 있는 곳입니다. 담양의 못 담을 우리말 빛과 합쳐 담빛이라는 담양의 또 다른 고유명사처럼 쓰고 있는 단어라고 해요.
꽉 찬 책과 나무,
커피와 댓잎 차의 향,
대나무 오르간의 소리,
높은 공간이 나를 둘러싼다.
나아가 폴딩 도어에 보이는
관방제림의 나무들도
나에게 다가온다.
마치 담빛이 나를 둘러싸고 있는
상상을 할 수 있다.
일상 여행가 발췌
담빛 예술창고 옆의 관방 제림에서 사색의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아요. 장신의 몸을 몇백 미터 이상 꼿꼿하게 세우기 위해 자신들의 뿌리를 서로 얽히고 설켜 모든 뿌리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대나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흔들리듯 약해 보여도 서로를 의지한 채 단단히 부둥켜안고 붙잡고 있는 대나무를 보며 작가들은 어떤 사색을 했을지 궁금해져요.
또 담양에 가고 싶은 이유였던 죽녹원은 독도 섬 크기의 1.8배 크기의 대나무의 정원이라고 합니다. 세상이 온통 대나무로 둘러싸인 듯한 크기라고 하니 정말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여행지 같아요. 일상여행가들이 소개하기 전부터 유명한 장소인 죽녹원은 개원한지 15년 차라 연간 관광객만 100만여 명의 유명관광지라고도 해요.
담양의 멋과 맛을 담기 위해 고심한 노력이 보이는 곳이라고 하니 자연의 무시무시한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대나무 차와 과자, 아이스크림도 맛보러 가고 싶어 근질거립니다.
두 작가들은 죽녹원을 끝으로 일상 여행지 소개를 마칩니다. 죽녹원 여행의 끝에서 새와 고양이의 에피소드를 적었는데 어미 새가 둥지와 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내던지며 고양이를 쫒던 모습 속에서 자연의 장대함은 일말의 가치도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을 찬미하던 대나무 숲에서 어미 새와 고양이는 그곳이 파라다이스인줄 모른 채 삶에 쫒기듯 살고 있는 것이라고...
우리도 여행을 떠나 일상으로 돌아갈 때 괴로운 생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일상 가운데 ’이미 존재하는 낙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인지하고, 즐기고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가야겠다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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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곳의 여행지 마다 두 작가들이 대화하듯 서로 비교하듯 적은 ’에디터 코멘트‘는 같은 장소도 성향이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문과생과 이과생의 소감이랄까요. 저는 문과쪽에 가깝기 때문에 지나 작가의 코멘트가 더 와닿기는 했지만 냉철한 듯 담백하게 풀어나가는 제임스 작가의 글도 매력있게 다가왔습니다.
지금까지 여행을 다니기만 했지 이렇게 글로 써보지 않았는데 여행을 못가 아쉽다고 생각하지말고 그동안 갔던 여행들을 정리해보면 어떨까란 생각이 들어요. 여행을 정리하면서 다시 여행가는 기분을 느껴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담양 여행지를 글로 쓰면서 대만의 보얼 특구를 떠올렸던 것처럼.
잘 버티고 있다 안심하면 코로나란 죽음의 너울이 턱 끝까지 올라오는 요즘, 여행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것은 기약 없는 그리움 같아요. 하지만 일상여행가 책을 읽고 나니 나는 이미 파라다이스 속에 있는데 그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과거를 그리워만 하지 말고 현재를 불평만 하지 말고 일상 속에서 나만의 보석들을 찾아보는 여행을 떠나봐야겠습니다. 삶을 비우는 여행을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