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은 책: <6번길을 지켜라 뚝딱>, 김중미 씀, 도르리 그리고 만듦, 유동훈 찍음, 낮은산, 2014
한 땀 한 땀 만들어가는 희망
2014.3.14. 우경숙
새로운 그림책이 한 권 나왔다. 1987년부터 빈민운동과 지역운동을 하며 공동체 삶을 살아온 김중미 작가님, 20년이 넘도록 함께 공부방을 지켜온 유동훈 사진작가님, 그 곁에서 자라온 2~30대 청년작가 도르리(김성수, 오정희, 유연수, 최단비)가 함께 공동작품을 냈다. 인형사진그림책 <6번길을 지켜라 뚝딱>! 이 책은 2009년 공부방 정기공연에서 상영된 인형극 <얘들아, 거꾸로 가자>를 담았다. 김중미 작가님 작품이라면 진실과 용기를 전하는 찡한 힘이 있기에 출간 소식이 들리면 곧바로 구해본다. 게다가 이번에는 처음으로 낮은 학년 어린이들도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이다.
만석동 공부방이 자리 잡은 터가 인천특별시 동구 만석동 6번지, 바로 책 제목의 6번길이다. 공부방 식구들이 모여앉아 한 땀 한 땀 만든 인형에, 창작이야기까지 담아 인형극 공연을 올린다. 인형극은 이 시대 약자들에게 연대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는 이야기그릇이다.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책이지만 낮은 학년 어린이들이 가까이 읽고 즐길 만한 책이다. 저학년 그림책의 다양성을 넓혀줄 거라 생각된다. 우리 아이들과 다함께 배우고 깨쳐야할 가치-평화와 공존을 이야기하기엔 긴 흐름의 장편도 좋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그림책도 효과가 크다.
책을 펼친다. 손으로 만든 인형과 세트, 작은 소품들..... 촉감까지 만져질 듯한 입체감이 있다. 아이들과 조 사장이 마주치는 첫 장면에서 뒤에 있는 초록색 슬레이트지붕 집은 실제로 6번길에 있는 옛 만석동 공부방이다. 도깨비 캐릭터 셋이 놀라울 만큼 생동감 있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힘세고 정의로운 형 도깨비, 겁 많아도 슬기로운 소심 도깨비, 청개구리 닮은 엉뚱한 거꾸로 도깨비. 역동적인 동세만 봐도 얼마나 기발하고 당찬지 가늠할 만하다. 그런 도깨비 녀석들이 자기네들만큼이나 당찬 아이들을 만난다. 그런데! 아이들이 사는 마을은 명품 아파트 개발로 곧 사라질 위기에 있다. 세상이 온통 개발 강박에 빠져 온 땅을 갈아엎는 동안 도깨비들은 살 곳이 없어 100년 동안 저 아래 땅굴에서 살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삶터에서 내몰리는 신세나 도깨비들이 사람 사는 세상에서 멀리 떨어질 수밖에 없던 사정이나 고만고만하다. 왜 오래된 곳이라면 기어코 처분되어야 하는 건지. 그 곳에 우리의 이야기가 있고 살아온 내력이 있고 오랜 지혜가 살아 숨 쉬고 있는데. 오래된 동네나 옛이야기를 보듬고 지켜내는 귀한 마음이 절실하다.
작가는 우리 옛이야기 속 화소를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현실의 문제에 끌어 들였는데, 딱 맞춤인 자리를 찾았다. 안타깝게도 지금 아이들에게 위력 있는 건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이나 외국에서 들여온 그림책들이다. 대립과 승부를 말하는 이 이야기들은 대개 나와 남을 금 긋는다. 이에 반해 옛이야기는 우리에게 공생의 철학을 깨우쳐준다. 선과 악이 맞서 누가 지배할 것인가 겨루는 갈등이 아니라 우리 안에 극복해야할 어둠을 걷고 같이 살아갈 존재로 껴안는다. 옛이야기 속 공생의 지혜에는 공감의 상상력이 더해지기 마련이다. 아이들과 도깨비는 닮았다. 아이들은 아직 순수해서 생명을 그대로 나와 같은 생명으로 느끼고 보듬는 마음이 있다. 개발의 뒤안길에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있다. 세상과 맞서는 패기와 당당함이 힘차다.
이 동네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릴 개발을 주도하는 조 사장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야기에 조 사장이 등장하자마자 이 인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못내 궁금해서 조바심이 난다. 현실에서의 갈등은 무 자르듯 쉬이 해결되지 않는다. 현실을 비추기라도 하듯 형 도깨비와 조 사장의 씨름은 현재진행형이다.
재미나게 읽히지만 읽고 나면 뭉근한 온기가 전해진다. 형 도깨비가 영웅적인 위력으로 조 사장을 제압하고 쫒아내는 문제해결이 아니라는 점이 무엇보다 탁월하다. 형 도깨비와 조 사장의 씨름 내기가 마중물이 되어 개발에 맞서는 목소리에 사람들이 관심이 생기고 보고 들으려 모여드는 사람들의 움직임이다. 그 흐름에는 평화를 지향하는 우리의 원래 마음을 되찾자는 메시지가 전해진다.
‘도르리’란 ‘밥을 함께 나누어 먹는다’라는 뜻이다. 둘러앉아 먹는 밥상에는 서로를 북돋는 힘이 있다. 도르리가 띄워 올리는 우리 시대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야기꾼, 이야기판이 더 필요한 세상이다. 우리들에게 진정 문학과 예술이 필요한 건 삶의 진실과 희망을 말하기 때문이 아닐까. 도르리가 한 땀 한 땀 일궈낸 희망, 과정부터 결과물까지 값진 창작물이다. <끝>
엄마가 읽던 걸 몇 번 힐끔 보다가 도깨비가 귀엽길래 제대로 읽어봤는데 섬세하고 표현력이 좋은 그림책이었다. 다양한 동작이나 캐릭터나 쓰레기봉투, 전단지 등등 소품을 잘 만든 것 같다. 장면구성도 재치 있고... 이야기를 구성하면서도 도깨비 캐릭터마다 다양한 개성이 있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도깨비의 주 종목이 씨름인데도 씨름 대결을 계속하는 조 사장이 좀 이해가 안 간다.
여튼 약자를 도와주는 내용이다. 생각해보면 도깨비들이 인간을 해칠 수도 있었을 텐데, 참 착하다. 참~ 능력 좋다!
근데... 요즘 애들도 도깨비를 알까?
서울 문래중3 손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