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 휴
부제: '이사돌아 수녀'와 '흔들리며 피는 딸들'의 25시 사랑일기.
김인숙 글라라 수녀님 카페: http://cafe.daum.net/clara212
가출하는 소녀, 가출하는 수녀님
우경숙 http://phillia0424.blog.me/
2011년 우리 나라, 삶의 질은 높아졌다고 하는데 행복하지 않은 아이들은 정작 늘고 있다. 엊그제 별공고 아이들이 쓴 시집 <내일도 담임은 울 삘이다>를 읽었다. 마음이 아리다. 한 치 앞 전망을 내다 볼 수 없는 사회를 살아가야하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감내해야 할 생활의 무게가 둔중하게 다가왔다. 그 아이들의 시를 읽으니 나는 <울기엔 애매한> 마지막 장면 원빈 녀석이 보인 울음도 터져나오지 않는 좌절의 표정을 떠오르기도 한다. 청춘의 자유를 유예한 세대. 그러기에 때론 주저 앉아버리고 싶을 만큼 자신을 놓아버리는 아이들도 있다.
학교나 사회의 경쟁에 내몰린 아이들의 깊은 상처를 받아안아 치유할 공간도 필요하다. 그런 도움을 주는 곳으로 학교에서 징계 받아 머물게 되는 위탁 대안교실이 있다. <사춘기 십대들과 소통하는 법>이 책은 '끔찍하게 말 안 듣는 십대와 소통하는 법' 란 부제를 달고 있다. 다양한 이유로 학교에서 징계를 받고 인성교육을 위해 대안교실로 보내진 중고등학생들을 만난 풀꽃샘의 일지이다. 지난 2000년부터 우리 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서울시교육청 위탁 대안교실이다. 수업 내용은 주로 자아 존중감 향상, 교우관계 개선, 학습 향상, 의사소통과 대화 기법, 가치관 형성, 진로 탐색과 미래의식 함양으로 되어 있다. 해가 갈수록 대안교실에 위탁되는 중고등학생의 수가 늘어나 지금은 1천여 명이 넘는다.
그런데 가정의 보호그물망이 요즘처럼 약한 사회에서 청소년들의 일탈은 더 빈번해진다. 학교의 징계를 받는 정도를 넘어서 청소년들이 소년범으로 법정에 서게 된다. 자기통제력을 상실한 경우이기도 하다. 소년범으로 법정에서 6호처분을 받은 소녀들도 있다. 열다섯 남짓의 이 소녀들은 6개월간 마자렐로 센터에서 보호받는다. 화장을 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인터넷 채팅으로 어른들에게 자신의 몸을 팔고…. 너무 일찍 어른들의 세계에 눈 떠버린 아이들. 그 아이들의 웃는 얼굴엔 또래보다 아픈 성장통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하지만 글라라 수녀는 이 아이들을 ‘희망의 꽃’이라 부른다. “좋은 어른이 곁에 있으면 반드시 변화의 희망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님들이 둥지 틀고 머무시는 마자렐로 센터. 이곳은 그 소녀들의 상처와 아픔을 품어주고 다시 세상에 내보내는 둥지 역할을 한다. 상처받은 소녀들이 한 집에서 서로를 지켜주고 치유하는 공동체, 이곳은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 위치해있다. 이곳으로 한 달 반 동안 수련수녀가 실습을 나오자 원장수녀가 이런 부탁을 했다고 한다.
"수녀님,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우리 집 아이들에게 묻지 말아야 할 게 세 가지 있어요.
너 엄마 계시니? 학교는 어디야? 몇 학년이지? 하는 질문들인데 우리 아이들은 대답할 수가 없어요." (236쪽)
마자렐로 센터는 그 아이들이 책임 있는 시민으로, 내면을 치유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나갈 수 있을 때까지 6개월간 한시적으로 도움을 주는 시설이다. 아침 저녁 둘러 앉아 먹는 집밥, 늦은 밤 이불을 덮어주는 수녀님의 손길에서 모정보다 강한 포용의 온기를 느낀다. 핸드폰을 이용할 수 없는 것, 저녁 5시까지 반드시 센터로 귀가하는 약속을 지키는 것, 센터 내에서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나누어 맡아 지키는 것 등을 지켜야한다. 소녀들은 조금씩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간다. 그래서 의무적인 6개월이 지나고서도 이 시설에 6개월 더 수용(?)되기를 바래서 더 남는 경우도 있다. 마치 금연 약속을 지인과 가족들 앞에서 선언하고 자신을 지켜나가려고 노력하는 경우처럼. 자기통제력은 타인의 관리와 관심이 동기가 되어 길러질 수 있다. 습관과 행동이 변화하는 것은 그만큼 힘들다. 시설에 온 아이들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반복하지 않으려고 자신을 더 신뢰할 수 있을 때까지 센터의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센터에 수용된 또래의 눈이 지켜보는 가운데 긴장을 놓지 않고 고검 (고입 검정고시), 대검 (대입 검정고시)시험을 치루고 자격증을 따기도 한다. 차가운 법원 바닥에 수갑을 차고 앉아있다가 센터도 인도되어 자신의 삶을 설계해나가던 소녀가 사회복지사의 꿈을 키우게 된 사연도 참 감탄스럽다.
#소담이
소담: 원장수녀님, 제가 결혼해서 아이들 낳으면 마자렐로 센터에 보낼래요.
원장: 왜?
소담: 여기가 제일 교육을 잘 시키는 것 같아요.
(소담아, 제에발. 너 하나로 충분하다.)
#민이
수녀님: 민이야, 너의 앞길은 결정되었다.
너는 비행 청소년들을 위한 사회복지사가 되어라. 너만큼 도통한 전문가가 어디 있겠니.
민이: 정말 그러네요.
센터에서 수녀님들과 소녀들의 생활이 어찌 기숙사의 낭만만 있겠는가? 때로 아이들은 내뱉지 못한 절망과 분노를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아이들이나 수녀님에게도 불끈불끈 표출하리라. 가슴 뭉클한 포용의 사랑을 실천하시는 수녀님들과 소녀들의 일화 하나하나가 모두 감동을 자아낸다. 하지만 책을 덮고서도 여전히 남는 여운은 바로 '글라라 수녀님의 가출사건'이었다. (203쪽)
'상처 많은 아이들과의 생활은 그 상처의 고름이 언제 누구에게 어떤 사건으로 터질 지 모르는 하루하루다. 너무나 잊고 싶어서 망각의 늪 속에 숨겨놓은 아이들의 상처는,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함께 생활하는 누군가에게 분노로, 막말로, 거친 몸짓과 행동으로 폭발한다. 아이들은 알까? 자신이 받은 상처의 파편들이 또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206쪽)
한 아이의 심한 욕설과 가시 돋친 반응에 글라라 수녀님도 더는 수용할 수 없는 정신적 기절상태가 되었다. 나중에 수녀님에게 쌍욕을 하고 오히려 수녀님을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위악을 떨던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아프게 각성했다 한다.
세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집도 없이 봉고차에서 라면이나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다가 보육원에 맡겨진 아이가 입은 상처
는 치유되지 못하고 옹이가 깊어지다가 그리되었다 한다. 이 곳에서 이런 일이 생길 때 가족 법정을 열어 진실을 듣고 서로에 대한 신뢰, 서로가 지킬 약속을 확인한다.
복지의 토대가 더 든든했더라면, 공교육의 토대가 든든했더라면 ...... 이런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도, 6호 처분을 받고 사회에서 내쳐지는 아이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김인숙 글라라 수녀님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 이 책의 주인공들인 소녀들에게 지금까지 잘 견디고 꿋꿋하게 살아주어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라고.
또, "어디서든 여기 살 때처럼만 하면 돼."라고 격려해주신다. 몸에 밴 무질서한 습관 때문에 또 쉽게 무너지려 할 때 이곳 생활을 떠올리며 다시 용기를 가지고 일어나라고.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은 추천의 글을 통해 이렇게 말한다.
"마자렐로 센터 아이들을 비롯해 장애아, 다문화 가정 아이들까지 모두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진정한 공교육의 토대를 마련할 때까지 경쟁에서 내쳐진 우리 아이들 좀 잘 부탁드립니다. 더 많이 수고해주십시오."
<너는 젊다는 이유 하나로 사랑받기에 충분하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고 후원하는 일에 더 큰 지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게 해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