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없는 동화책>, 김남중, 창비,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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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없는 동화책>이 필요한 세상이다.
우경숙
2011 어린이삶을 담아낸 르포
아프고 시린 동화 <동화 없는 동화책>을 읽었다. 서걱거리는 2mb 현실 안에 살고 있는 어린이 생태보고서! 김남중 작가의 전작 <미소의 여왕> 때도 주위 사람들에게 격찬했지만, 늘 김남중 작가의 작품은 기대 이상의 만족을 준다. 이번엔 리얼다큐 혹은 신자유시대 사는 어린이 르포같은 단편 여섯 편! 이 시대 작가 김남중님께 마음으로부터 박수를 보낸다!! 오승민의 일러스트도 현실감 있는 서사에 실감을 더한다.
울기엔 좀 애매한, 초등버전
<울기엔 좀 애매한>(최규석, 창비)이 입시준비라는 현실에서부터 이미 신자유주의가 족쇄처럼 발목을 잡는 청소년들의 현실을 입체감 있게 그렸다면, <동화 없는 동화책>(김남중, 창비)이 그려내는 세상은 더 섬뜩하다. 생존의 문제에 발목을 잡힌 건 초등시절 아이들도 마찬가지라는 현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면 다 고만고만한 게 아이들 삶 같지만 조금만 한발짝 다가가 가만히 들여다보면 지금을 견디고 있는 자체가 용한 아이들도 여럿이다. 초등학생들들이 어른들로부터 보호 받아야할 나이에 너무 일찍 생존에 대해 위기를 느끼고 직면해야 한다는 것은 유년기의 낭만과 꿈을 통채로 압류 당한 기분이다.
참회합니다. 내가 돌보지 못한 아이들
내가 돌보지 못하고 지켜보기만 한 아이들이 떠오른다. 개인의 힘만으로 가정의 보호만으로는 현실의 거센 바람을 견디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 바람 숭숭 들어오는 막사같은 데서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게 자라나는 아이들 마음에 얼마나 큰 생채기를 남기는가!
사회 복지의 수준이 아직 미약하여 내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인 아이들을 해마다 제법 만난다. 우리 반에도 내 마음을 온통 안쓰럽게 만드는 위기 가정의 어린이가 있다. 고작 4학년인 이 녀석이 감당해야되는 현실은 어마어마하다. 오래전부터 조부모가 부양하던 가정인데 조모가 암 말기 판정을 받고 두 분이 지방 기도원으로 자연요법 요양 차 내려가 계신다. 그 녀석은 자기 몸 하나 건사하는 걸로 부족하여 뇌출혈로 몸이 불편하신 아버님마저 이래저래 돌봐드려야 한다. 어머니는 본 적이 없다고 하고. 이 녀석은 늘 무덤덤한 표정을 하고 있어 참 속을 알 수 없다. 학기 초 내 추천으로 지역아동센터에서 방과후부터 저녁 시간까지 보내고 있다. 남자아이지만 소풍 날이면 제 김밥을 제 스스로 싸온 경력에 이제껏 4년째인데 '아버지가 제 김밥을 맛있어 하나? 안 하나?'가 녀석의 최대 관심사이다. '김밥꺼리 장보는 건 누가 하냐'니까 아버지가 인터넷으로 주문하셨다고 한다. 휴~~! 이렇게 생존의 조건이 제일 걱정거리인 이 녀석에게 공부의 목표는 애초부터 우선 순위에서 밀려나 성적은 하위권이다. 이 아이의 자존감을 세워주느라 봄소풍때도 이 녀석 김밥을 먹어보고는 "우와~~ 여태 내가 먹어본 김밥 중에서 최고다."하고 너스레를 떠는 게 고작 내가 하는 일이다. 그러면 이 녀석은 소리도 없이 배시시 웃다가 "선생님, 이거 제가 오늘 아침에 직접 싼 거에요" 그런다. "김밥집 김밥이랑은 비교도 안 되는 걸."하며 연신 주워먹는 나.ㅎ
생존의 장에 내몰린 아이들
'수학왕 기철이', '날아라 장수풍뎅이', '마지막 손님', '혼자가 아니야', '그림 같은 집', '크로마뇽인은 동굴에서 산다'. 여섯 단편을 읽으며 마음이 아려온다. 나 역시 모두 충족되지 않는 욕구에 불만에 차서 '부모님 해주시는 밥 먹고 사는 시절이 좋은 거'란 어른들 말씀 귓등으로 들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밥벌이의 힘겨움 따위 내가 꿈꾸는 낭만적 미래와는 다른 세상인 걸로 알고 철없이 자랐다. 그런데 요즘은 부모님 해주시는 밥 먹고 지내는 십여년 세월을 못 누리고 사는 아이들이 많다.
몇 해 전 대형 마트에서 장난감을 훔치다 보안팀에 잡혀서 학교로 연락이 온 제자 'ㅅ'이 생각난다. 그날 그 녀석을 찾으러 마트에 갔다가 집에 데려다주었다. '아 이녀석은 이런 쪽방에서 엄마랑 이렇게 내팽겨진 채 용케 견디고 있었구나', 나는 담임 선생이란 사람이 방과 후에 남겨 구박하면서 지냈구나 싶었다. 몇 달이 가도록 이 아이의 실존은 만나지 못하고 그저 문제 풀이만 해대면서 대단한 도움이라도 주는 양 하고 있었구나 싶었다. 다행히 지역아동센터가 가까이에 새로 생기면서 이 곳에서 이 아이의 이발이며 목욕이며 깨끗한 옷을 챙겨입는 일, 아토피를 치료받는 일 등의 돌봄이 아이를 조금씩 달라지게 만들었다. 다른 학교로 근무지를 옮긴 후 통 말이 없던 아이가 내게 학교로 편지를 써 보낸 날, 미안함에 눈물이 났다. 어른이 너른 시야로 어른 노릇을 못하고 '여태 살면서 내 앞가림만 하고 지냈구나' 싶은 마음에 부채감이 밀려왔다.
크리스마스도 다가오는데 이 책에 나오는 씩씩한 여섯 친구들을 위해 여섯 가지 소원을 빌어본다.
'수학왕 기철이'에게 기적이!
기철이가 가계부를 보면서 아무리 궁리해도 옥탑방을 전전하며 사는 가족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부모님이 숨만 쉬고 백십년 일해야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정하고 난 후에는 어떤 삶이 이어질까? 기철이가 잘하고 좋아라 하는 수학학원이나 수학 과외는 '있는 자들의 몫'이라는 현실을 씁쓸하게 인정한 기철이. 최근 저소득층 교육을 위해 1500억을 기부했다는 안철수 박사님의 기금이 기철이에게 전해지길. 그래서 기철이를 수학 영재로 기르는 데 나라와 사회가 힘을 모아줬으면.
'날아라 장수풍뎅이'의 강건이에게 기적이!
실직 당해서 생계를 위해 학교 앞에서 몰래 장수풍뎅이를 팔다가 도망 갈 수 밖에 없는 강건이 아버지. 잘 생기고 키크고 힘세고 부지런한 강건이 아버지(30P). 강건 아버지가 주 5일제 수업이 시작된 강건이네 초등학교에서 환경교육 강사로 또는 체육 강사로 아이들과 가정도 지키고 환경을 지키며 자식 앞에 부끄럼 없이 살 수 있길.
'마지막 손님'의 선미에게 기적이!
기름이 유출된 사고를 일으킨 대기업이 그간 지역민들에게 생업에 피해를 끼쳐 송구스럽다며 보상금이라도 얼마간 내놓았으면. 그래서 회 장사 대신 라면 장사를 하던 그간의 손실이 복구되었으면. 슬퍼할 새도 없이 '세븐 스타'를 떠내보낸 선미에게 남자친구든 열중할 수 있는 취미든 다른 마음 붙일 곳이 생겼으면.
'혼자가 아니야'의 이랑이에게 기적이!
조손 가정인 이랑이와 할아버지. 할아버지 말씀 "언제는 돈 걱정 안 하고 살았나? 죽어야 그 걱정 끝나지."
면사무소에서 붙인 산불 감시원 모집에 이랑 할아버지가 쓴 지원서
"손녀와 둘이 먹고 사는 데 먹고 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가스가 떨어졌습니다. 연탄도 몇 장 없습니다. 꼭 뽑아주시기를 간곡하게 부탁드립니다."
이랑 할아버지는 박원순 서을시장을 만나 사람 사는 세상, '서울시를 공동체로 만드는 마을 만들기' 제안에 참여 하길. 조손 가정 아동 방과 후 돌봄을 함께 맡아하는 복지관이 마을에 생겨서 이랑 할아버지가 인자한 미소로 아이들을 맞길. 때론 이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구비구비 옛이야기 들려주며 달래줄 수 있길. 함께 동네 뒷산을 오르며 어린 친구들과 사는 이야기 나눌 수 있길.
'그림 같은 집'에 나오는 영산이나 '크로마뇽인'에 나오는 누나와 동생에게는 차마 무슨 소원을 빌어야할 지 모를 만큼 참혹하다. 내가 겪어볼 수 없는,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던 현실을 견뎌내고 있는 어린이들, 그들의 삶에 옛이야기 속 복처럼 응당 받을 만한 복이 눈처럼 내려 덮이길 기도해본다. 슬프다. 그렇지만 더 많은 어른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동화이다. 다시 한 번 작가님께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