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자기 위 손끝에서 완성된 한 작가의 소설
소중한날의꿈 2018/08/10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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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 톰 행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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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08-06
- : 201
주물 노동자가 쓴 소설과 유명 배우가 쓴 소설이 있다. 이 둘의 공통점은 저자의 직업이 작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사실 때문에 그들의 글이 폄하될 수도 있고 반대로 부풀려 평가받을 수도 있다. 작가도 아니면서 어느 정도로 썼나 한번 보자며 삐딱한 눈으로 책을 읽는 독자도 있겠고, 글쓰기가 본업도 아닌데 이토록 훌륭하게 글을 쓸 수 있냐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독자도 있을 거 같다.
배우 톰 행크스(Tom Hanks)가 단편 소설집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펴냈다. ‘오스카상을 수상한 세계적 배우의 생애 첫 소설집’이란 홍보 문구가 두드러져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 책을 대하는 내 마음부터 분명히 해 두고 읽어야지 싶어, 그저 ‘한 사람이 쓴 소설 한 권’을 읽는다는 마음가짐을 갖기로 했다. 책 띠지와 책 날개에 나와있는 그의 얼굴 사진을 일부러 못 본 체 할 수는 없겠으나 최소한 ‘배우가 쓴 글’이란 생각은 좀 내려놓고 책을 읽어 나갔다.
단편 소설집의 이야기는 다 제각각인 듯 보이나, 여러 이야기 속에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나 있거나 숨겨진 작가의 무의식이 베어나 있기도 하다. 이런 흐름들을 찾아가며 책을 읽을 때 그 재미는 훨씬 크다. 이 책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에서는 시간적 배경이 도드라져 보였다. 한정된 시간을 혹은 그 시간 너머를 상상하다 보면 이야기는 더 깊어졌다.
<석 주 만에 나가떨어지다>에서 완벽하게 다른 성향을 가진 두 남녀의 연애는 ‘첫 번째 날’부터 정확하게 ‘스물한 번째 날’까지만 이어진다. 21일 동안 일어난 사건들이 독자에게 보고되고 우리는 아슬아슬한 그들의 연애를 지켜본다. <특별한 주말>에서는 아빠, 새엄마와 함께 살고 있는 열살 소년이 생일이 낀 주말 동안 자신을 낳아준 엄마와 특별한 시간을 가진다. 그 주말 이전과 이후의 아이의 삶에 대해서는 독자가 상상할 뿐이다.
<그린스트리트에서 보낸 한 달>은 이혼 후, 아이 셋을 데리고 어떤 동네로 이사온 여자가 새 환경에서 지내는 한 달 동안의 이야기를 쓰고 있다. 주변인들을 경계하며 한 달을 보내다가 결국 마음을 해제하게 된다. <내 마음의 명상록>에서는 놈팡이와 사귀다 헤어진 여자가 벼룩시장에서 타자기 한 대를 산다. 거기에 붙은 ‘이것은 내 마음의 명상록입니다’라는 글귀를 보고 30년 전과 현재를 연결시키며 어떤 의미를 알아가려고 한다. <과거는 중요하다>에는 시간 여행 장비를 통해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기를 즐기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과거에 머물 수 있는 22시간을 지나치면서 겪게 되는 엄청난 결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석 주, 주말, 한 달, 30년 전과 현재, 1939년의 과거. 이 모든 시간은 스토리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시간이 단지 길고 짧다는 것으로 한정되지 않고, 각 시간의 의미가 인물들마다 다르게 작용한다. ‘석 주, 21일’ 간의 연애는 짧아 보이나 둘은 이별을 결정하기에 충분한 시간임을 안다. ‘주말’ 동안 황송한 대우를 받은 아이에게 사흘은 앞으로 지루한 일상을 살아낼 큰 힘이 되었을 것이다.
평범한 친절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여자는 ‘한 달’이라는 시간을 보낸 후,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신한다. ‘30년 전’에 둔탁한 소리를 내며 음소 하나 하나 꾹꾹 눌러 쳤을 것 같은 타자기는 현재로 이어져 자신의 삶을 타자하고 있다. 타임워프를 하라면 반드시 ‘1939년’이어야 했던 주인공은 과거가 너무 소중했기에 현재를 소홀히 여길 수밖에 없었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말았다.
톰 행크스는 타자기의 열렬한 애호가로 수집한 타자기만도 백 대가 넘는다고 한다. 글을 쓸 때도 타자기로 쓴다고 하니 이 책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의 제목은 옳다. 만약 책 제목이 ‘톰 헹크스가 들려주는 이야기’였다면 배우 톰 헹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책을 읽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다행스럽게 ‘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이기에 우리는 톰 헹크스를 상상하기보다 타자 자판 위에 놓인 그의 손가락을 떠올리게 되고, 더 나아가 그 손끝에서 완성된 한 작가의 소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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