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에 갇힌 책이 부활하는 책으로
소중한날의꿈 2018/08/03 1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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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재를 떠나보내며
- 알베르토 망겔
- 12,600원 (10%↓
700) - 2018-07-30
: 458
“그 돈이면 책 두 권은 살 수 있을 텐데.”
언제부터인가 무엇을 사려고 돈을 지불해야할 때 그 돈으로 책을 산다면 몇 권은 살 수 있겠다며 환산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여기에는 다른 걸 사는 것보다 책을 사는 데 드는 돈은 아깝지 않다는 뜻이 숨어 있다. 그만큼 책의 가치를 높이 산다는 것이다.
여기 나보다 훨씬 책을 사랑하고 아낀 사람이 있다. 그의 서재는 개인 도서관과 같아 3만 5천여 권의 방대한 책이 꽂혀 있다. 이 서재를 살펴보면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아랍어와 같은 언어 별로 책을 분류해 놓았고, 어릴 적 추억이 어려있는 그림형제의 <<동화집>>은 귀중한 책으로 자리하고, 사전 들을 모아놓은 곳은 특별히 서재의 주인이 애호하는 공간이 된다.
이렇게 멋진 서재의 주인은 바로 알베르토 망겔이다. 그는 현재 아르헨티나 국립 도서관의 관장으로 일하고 있으며 여러 권의 책을 펴냈다. 이 책 <<서재를 떠나보내며>>는 단칸방으로 이사를 하게 되어 자신의 서재를 정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책을 싸면서 떠오르는 상념과 감정을 쓴 책이다.
한 사람이 읽고(또는 읽으려고) 꽂아 둔 책장의 책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책의 주인이 갖고 있는 가치관, 관심사는 물론이고 그를 자라게 한 힘이 되는 원천과 경험(흔히 말하는 간접 경험)의 배경까지 훑어 볼 수 있다. 이처럼 한 사람의 서재는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말해 준다. 망겔 또한 이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의 애독서 목록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으며 또 그 사람과 사귀고 싶은 마음이 드는지 여부도 미리 알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서재는 일종의 자서전이다”(8쪽).
이사를 많이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이삿짐센터 사람들로부터 가장 홀대받는 것이 책이라는 것을. 그들에게 책은 그저 무거운 짐일뿐이다. 그런데 저자는 책을 풀어 서가에 꽂는 일과 책을 싸서 상자에 담는 일을 이렇게 표현한다.
“책 풀기가 소란스럽고 무질서하게 부활한 책 더미를 개인적 미덕과 변덕스러운 악덕에 따라 서가에 위치시키는 것이라면, 책 싸기는 이름 없는 공동묘지에 책들을 집어넣어 그들의 주소를 서가라는 2차원에서 상자라는 3차원으로 바꿔주는 것이다”(58쪽).
공동묘지로 직행한 책이 언젠가는 부활할 날이 오겠으나 책을 싸고 있는 저자는 슬픈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다.
책을 싸며 부른 ‘비가’에는 망겔이 지금껏 읽어 온 책이 소환된다. 카프카의 <<변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단테의 <<신곡>>, 브로드웨이의 노점상에서 수집한 책 중 <<웨일스의 시>> 등등 방대한 책이 저자의 심오한 지식과 만나 깊은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서재를 떠나보내는 일이 마치 자신의 독서 행위를 끝내는 것처럼 느껴졌던지 자신의 읽기와 삶에 대해 마무리하는 듯한 통찰의 글을 펼쳐 보인다.
결코 쉬운 이야기는 아니라 이해하기 어려운 점도 있는데 다행스럽게 옮긴이가 많은 부분에서 ‘주’를 소상히 달아 주었다. 역자가 책의 전면에 드러나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데 너무도 친절하게 도움을 주어서 고맙기까지 했다.
내 책장에 꽂힌 책들을 손으로 훑어 본다. 어떤 책에서 손가락은 멈추고 제목의 글자 하나씩을 쓰다듬는다. 그 책을 읽었던 장면이 떠오르며 그때 느꼈던 감정도 어렴풋이 스친다. 꺼내 펼쳐보면 어김없이 줄이 그어져 있고 여백의 메모도 눈에 띈다. 과거의 책은 현재의 나를 만들었고, 지금 읽는 책은 훗날 또 다른 나를 완성해 갈 것이다.
알베르토 망겔은 서재를 떠나보내며 비가를 불렀으나, 곧 국립 도서관 관장이 되어 개인 서재보다 더 훌륭한 도서관 서재를 얻게 되었다. 그처럼 우리의 책이 기억 저편 상자 속에 갇혀 버린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생명력있게 부활하는 책이 되어 다시 만날 수 있으리란 소망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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