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을 배우는 걷기
소중한날의꿈 2018/05/09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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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어라
- 신한범
- 11,700원 (10%↓
650) - 2017-12-22
: 55
산을 경험하는 두 가지 방법으로 등반과 트레킹(trekking)이 있다. 등반은 산 정상을 오르는 것이고, 트레킹은 산 기슭을 따라 걷는 것이다. 등반을 하면 산 꼭대기 봉우리를 밟고 더 이상 오를 데가 없어 정복의 기쁨을 누린다. 트레킹을 하면서는 산이 잘 보이는 곳까지 걸어가 산과 마주하고 감탄한다. 등반에 비해 트레킹은 겸손해 보인다. 산을 정복해 버리지 않고 그저 바라볼 뿐이다. 산 속에 들어가버리는 등반에 비해 산과 거리를 두는 트레킹이 산을 더 잘 볼 수 있을 거 같다.
<<일생에 한 번은 히말라야를 걸어라>>를 쓴 저자는 16년 동안 아홉 번 히말라야를 걸었다. 왜 히말라야를 가느냐는 질문에 ‘끌림’ 때문이라고 답한단다. 그 끌림이 궁금하던 차, 온통 분홍빛으로 물든 책에 나도 끌려 들어간다. “네팔에는 3대 트레킹 코스가 있다. 세상의 지붕 ‘쿰부 히말라야’, 천상의 화원 ‘랑탕’,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이다”.(16쪽) 책에서는 쿰부 히말라야와 안나푸르나의 여정을 싣고 있다. 17일 동안 세 명의 트레커, 두 명의 포터, 한 명의 가이드와 함께 쿰부 히말라야를 걷는다. 어느새 나도 책에 실어둔 지도를 따라 이들을 뒤따른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고산을 걷는 것이기에 꽤 힘들어 보인다. 고산병이나 안전의 위험이 따른다. 몸에 이상이 올 때는 바로 쉬어 주어야 하며, 몸 상태에 따라 때로는 중간에서 트레킹을 포기하기도 해야 한다. 눈이나 바람, 안개 같은 날씨 때문에 계획했던 길로 가지 못해서 우회하거나 상황이 나아지기를 마냥 기다리기도 한다. 추운 데다 산소가 부족한 길을 하염없이 걸어야 하는데 얼마나 버거울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 걷고 그 다음 발걸음을 내딛으며 묵묵히 걷는다. 트레커들에게는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바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한 걸음을 옮기지 못하면 그 다음은 없기 때문이다.
“톡톡(2,780m) 마을을 지나자 앞쪽이 트이면서 뒤에 숨어 있던 탐세르쿠(6,608m)와 캉데카(6,779m) 모습이 보였다. 설산은 능선 뒤에 숨어 머리만 치켜들고 있었다. 보일 듯 말 듯 보이는 설산 모습이 사람 애간장을 태운다. 산은 한꺼번에 모든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 내가 서 있는 위치, 마음 상태, 그리고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산도 사람도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봐야 아름답다. 산속에 들면 산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인간관계도 너무 가까운 곳에서 보면 상대방의 참모습을 볼 수 없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통해 적당한 거리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를 배웠으면.”(35쪽)
트레킹을 하며 ‘사가르마타(에베레스트의 네팔어)’와 ‘안나푸르나’와 마주한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가장 좋은 뷰를 보여줄 곳까지 간다. 거기서 바라보는 산은 장엄하고 아름답다. 그 앞에서는 어느 누구라도 겸손해질 수밖에 없을 거 같다. 산이 내보이는 속살을 보며 자신의 속을 돌아보게 되지 않을까. 책의 두 면을 채운 눈 덮힌 산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토록 경이로운데 직접 히말라야를 걷는다면 어떨까 싶다.
나는 수직으로 오르는 걸 두려워한다. 산은 저만치 우뚝 서 있는 것이라 여길 뿐 그다지 친하지 않다. 수평선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거나, 오르막이 거의 없는 평평한 숲길 걷기를 좋아한다. 그나마 걷기는 즐기니 트레킹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 조금 생긴다. 안나푸르나 트레킹 여정 중 가장 쉬운 ‘오캠’(오스트레일리안 캠프)은 가능할 거 같다. 저자가 사랑하는 ‘포카라’ 마을에서 마음껏 쉬고 즐기면서 트레킹에 대한 마음을 키울 수 있을 거다. 그 곳에서 나는 한 걸음씩 내딛으며 어느새 새로운 겸손을 배우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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