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춘원 이광수와의 개인적인 친분 때문에 이 책을 쓸 것을 권유받았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광수에 대한 내용은 거의 없고 자신의 회고담으로 일관하고 있다.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먼저 살아간 사람의 일생을 읽는 것은 후세의 독자들에게도 묘한 감동과 교훈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이 일본에서 일본어로 먼저 출간되고 그 후 한국어로 번역되었다는 점 때문에 나는 저자의 섣부른 펜질이 또 얼마나 많은 한국인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조장했을까 우려하게 되었다. 한국 남성에 대한 저자의 단정적이고 오만에 가득찬 정의를 보자.
한국 남성들은 어려서부터 여성을 대하는 범절을 배울 때 여성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하나는 어머니요, 또 하나는 기생이다. 어머니를 대할 때 아들은 절대적인 사랑에 싸여 모든 것을 믿고 맡긴다. 어머니를 향한 응석, 신뢰, 사랑은 그의 내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장성하여 결혼을 한 뒤에도 아내 대하기를 이성으로서가 아니라 모성으로 대한다. 여자는 결혼하면서 남편이 아니라 아들을 얻는 것이다.
한국의 아버지들은 아들이 일정 나이가 되면 기생집으로 데리고 가서 술좌석을 마련하고 여자들과 노는 법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직업적인 여성과 노는 법이지 여염짐 여성을 대하는 법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국 남성들은 지금까지도 가족 아닌 여성을 대하는 데 서툴다. 지나치게 쩔쩔 매지 않으면 능숙한 척 하면서 화류계 여자를 대하는 듯한 무례를 범한다. 직장 여성이 많아진 지금도 그들은 여성 동료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대하기 보다 자기들을 즐겁게 하는 존재로 보는 경우가 많다.(173p~174p)
나는 이 부분을 읽고 저자가 혹시 미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얼마나 많은 한국 남성을 만나봤기에 이토록 단정할 수 있을까? 설사 일제시대였다고 해도 아들을 데리고 기생집에 출입하는 사람이 한국인 가운데 얼마나 되었을까. 어금니를 깨물고 관대하게 보아줘도 전체의 1%에 미치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한국 남성이 가족 아닌 여성을 대하는 데 서툴다고? 언제적 이야기일까? 아니 옛날이라고 해도 결코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 남성에 대한 저자의 이런 어처구니 없는 적대감과는 달리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한결같이 치졸한 변명과 옹호로 일관하고 있다. 사회주의 운동에 회의를 느껴 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이주한 저자의 아버지는 한국인 거리가 아니라 일본인 거리에 정착한다. 그리고 조선인 거리와 달리 일본인 거리는 훨씬 위생적이며 깨끗했다는 회상이 덧붙는다. 차라리 "더럽고 지저분한 조선인 거리가 싫어서"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자신의 부모에 대한 모욕같아서 피한걸까? 그런데 저자는 아버지의 입을 빌려 "합방을 했으면 속속들이 섞여 살아야지 왜 조선인 거리, 일본인 거리를 나누느냐"고 강변한다. 물론 조선인 마을의 위생 향상을 위해 저자의 가족들이 기여한 바는 나타나 있지 않다. 과연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친일파 이광수의 삶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당시 지식인 가족의 모습이다.(은근히 민족적 분노를 자아내는 이광수에 대한 변명(232p)에 대한 논평은 생략하겠다. 이광수에 대한 평가는 그의 그윽한 눈빛이 아니라 그의 실제 언행으로 해야 한다)
더구나 저자와 저자의 언니는 조선인 학교가 아니라 일본인 학교에 취학했다. 조선인을 받지 않겠다는 일본인 학교를 윽박질러 결국 조선인 입학을 허락받았다며 이것이 동포들에게 베푼 친절이라고 설명한다. 정말 웃기지도 않다.
저자의 고모인 나혜석이 시댁의 학대를 받았다는 점을 강조할 때는 그 시댁식구들이 "고모에게 열등감을 느껴서(176p)"였다고 전혀 객관적이지 않은 해설을 다는 것은 그냥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변명과 책임회피로 일관하는 저자의 가족 변명기에서 일제시대 우리민족이 억압받고 고통받았던 이유과 어쩌면 이런 비겁한 지식인 가족들이 많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독립운동을 한 사회주의자 아버지(그러나 그는 평생 자본가로서 살았다)에 대한 변명으로 일관하면서 은근히 일제식민지 시대에 대한 묘한 향수와 함께 행간에서 배어나오는 "당시에도 나는 괜찮게 살았다"는 자부는 역겨움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를 권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일본에까지 출판되지 않았으면 좋았을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