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
후박나무 2003/02/17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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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시골 도시 할것없이 휴대폰 ,인터넷...등등의 첨담 기기 로 인해 접촉의 기회가 무한정 열렸지만 개인의 외로움은 더커져 가는듯하다. 과학은 더 편리하게,더빠르게...라고 외치는 인간의 욕구를 따라 가기에 바쁘다. 빠름에 중독 되다보니... 시간은 돈이되고 사람들의 성격도 급해지고,혹은 포악해지고 인정은 더 메말라 간다. 그러나 바쁘고 빨라질수록 인간의 한구석엔 느림과 여유에 대한 생각이 향수병처럼 자리하고 있다.
바쁜 이 시대에 [느림에대한 의미]란 책은 삶의 다른 방식을 제시하고 있는, 인간다운 삶을 가치를 보여주는 고마운 책일 것이다. 이책을 읽으면서 나는 느리다는 것이 정신과 육체적으로 어떤관찰을 가능케 하는가? 또는 어떤 발견을 가능케 하는가? 라는 의문을 풀수 있을거란 기대를 품었다.
이책의 저자 피에로 쌍소는 파스칼의 말을 서두에 인용한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한가지,고요한 방에 들어 앉아 휴식할줄 모르는데서 비롯된다.' 내 생각에도 현대인들의 불행은 자신에게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는데 있다. 그러니 방안에 가만히 지내는건 휴식이 아니라 고통이다. 처음엔 ...피에로 쌍소가 어떤 사람 인지는 모르지만.. 느림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니까 호감이 갔다.
그는또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언제 부터 내운명을 인정하고 받아 들이기 시작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보라고 충고 한다. 이정도면 훌륭한 책이 아닌가? 그러나 나는 이책을 기쁜 마음이 아닌 신경질 나는 마음으로 두번 읽어야 했다. (내가 책을 두번읽는 경우란 10년에 한번 정도 있는 희박한 일인데...^^)
쌍소는 이책을 써나가면서 자! 그러면 , 여기서 잠깐, 알다시피 ,그러니까...등등 마치 사람을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듯한 글을 쓴다. 그의 이 발랄한 글쓰기는 또한 많은 프랑스 도시이름과 거리이름 ,친구이름.... 또 그의 글쓰기에 영향을 끼쳤을 사람들 ...이를테면 파스칼, 장자끄, 샤르트르, 하나님 아버지, 예수, 앙드레 브로통, 조르주 페릭, 디드로, 알랭맹크, 마르크 기윰, 리쾨르, 바슐라르, 장 지오노, 루이 드 벨송, 샤를 줄리에, 시몬베유, 마르셀 뒤샹, 앤디 워홀, 미켈란 젤로, 나폴레옹, 헤겔, 아르통, 베를로 퐁티, 줄리앙소렐, 필립메예르...등 을(빠진 이름이 있다면 미안!) 단순 거명하거나 그들의 말을 인용한다.
그의 글은 수다쟁이 처럼 발랄하나 깊이가 없고 몇군데 멋진표현을 발견할수 있음에도 산만하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다. 끝없는 생각들이 마치 우리에갖힌 불안한 사슴들 처럼
이리뛰고 저리뛰고 있다. 내가 신경질 나는 이유는 바로 이점이다. 그는 독실한 크리스찬 으로 다음과 같은 그의 사고는 또 그의 한계가 될수밖에 없겠다. '그리스도에 힙입어 이세상을 가득채우고 강과 산들을 찬양 했던 모든 우상들을 세상으로 부터 몰아 냈다'
'하나님의 은총, 그때부터 세상은 우리의 적이 되기를 멈추었고,우리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십사고 그분께 공손히 부탁만 하면 되었다.'
신앙(절대 적인 복종을 요하는...) 속에서는 상상력의 자유가 제한되고 사고의 무한정성이 발현될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발랄함과 섬세한 글쓰기는 스스로 묻고 답하고 때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자신의 뛰어난 사고의 능력?에 취해있는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는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하지만 행복하게 살수 있는방법은 안다고 말한다.
그것은 '끝임없는 수다와 쓸데 없는 일들을 하지 않는것' (아뿔사!나는 이미 그를 수다쟁이라고 표현 했다.) 그가 忙 中 閑 이니 動 中 定 이란 동양 사상을 알앗다면 그렇게 수다스럽지는 않았으리라. 나는 그에게 느림의 의미에 대한 공부를 위해서 [비파사나1,2]를 권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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