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가 되어 정세랑 작가의 새 소설집 『옥상에서 만나요』 중 한 편인 「이혼 세일」을 조금 일찍 읽게 됐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좋았다. 그리고 읽는 내내 이재와 닮았던 친구를 생각했다.
이재는 이유 없이 특별한 사람이다. 평범한 반찬도 이재가 만들면 맛이 다르고, 남들이 다 걸치고 다니는 옷가지도 이재가 걸치면 특별해 보인다. 학창 시절엔 더 예쁜 애들이 있음에도 인기가 많았다. 내게도 이재 같은 친구가 있었다. 과거형인 이유는 많은 관계가 그렇듯이 지금은 뭐하고 사는지 소식도 듣기 힘든 사이가 됐기 때문이다. 그 애에게도 불가사의한 매력이 있었다. 그 나이 또래의 학생이 들고다니는 물건들이 다 거기서 거기인 가운데, 그 애가 가짐으로써 비로소 빛을 발하던 그런 기억들. 오로지 그 애에게만 허락된 재주들.
이런 미묘한 선망의 대상인 이재는 이혼을 결정하고 집안 살림을 전부 이혼 세일이란 이름으로 처분하려 친구들을 부른다. 이재의 여섯 친구들은 ‘쇠도 씹어 먹을 것 같았던 소녀 시절’을 함께 보내고 이제는 저마다 다른 삶을 꾸려가고 있다. 짧은 이야기 속에서 보여주는 단편적인 정보로 여섯 명의 삶을 다 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들의 인생이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으며 나름의 고단함을 견디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이재의 이혼 소식을 접한 그들은 각자 이재와 나눴던 대화들, 보냈던 시간들을 떠올린다.
정세랑 작가는 인생에서 얻은 피로를 사람으로 위로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이혼 세일>에서도 이런 면이 돋보인다. 예를 들면 육아에 지쳐버린 지원을 이재가 위로하는 장면. "너는 게다가 보기 드물게 일관된 양육자니까." 혹은 홀로 살아가기에 불안정한 미래를 걱정하는 민희에게 아영이 건네는 위로. "이재 꼬드겨서 우리 셋이 살까? 실직하면 서로 밥 먹여주면서?"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는 애틋함과 안락함은 우리에게도 이런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감정이다. 여자들에게는 진정한 우정이 없다고, 여자들의 세상은 질투와 가식으로 돌아간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이재와 친구들은 보란듯이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되어준다.
그리하여 이재의 집에 모인 친구들은 살림들을 사이좋게 나눠 가진다. 침대 매트리스와 주방기구까지도 처분한 이재가 과연 어떻게 살 계획인지 친구들은 궁금해한다.
이재는 아영과 민희가 농담처럼 말한 대안 가족을 선택하진 않았다. 대신 가진 걸 훌훌 털어버리고 유랑하는 미래가 이재를 기다리고 있다. 이 유랑은 불안이나 비극적 결말을 암시하지 않는다. 뒤를 돌아보면 이제는 각자의 삶을 꾸리며 근면하게 사는 여섯 친구가 버티고 있으니까. 그 자리에서 자기 몫의 삶을 산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는 존재들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일관되게 살아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한 일인가? 어쩌면 이재는 생각보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돌아올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재의 물건들을, 장아찌 누름돌까지 나눠가진 친구들이 거기 있다. 이재의 집은 없어진 게 아니라 이재와 이재의 친구들처럼 자연스럽게 모습을 바꿨을 뿐이다.
이 단편을 읽는 동안 내 기억 속 이재였던 내 친구를 오랜만에 되새겼다. 정말로 그 애가 특별했는지, 아님 내 마음이 그 애를 특별하게 만들었는지는 아직까지도 정확하지 않다. 이제는 정확하게 가려낼 필요도 없으니 그냥 흐리멍텅하게 두려는 생각이다. 어떤 일들은 분명하지 않을 때 더 아름답다. 대신 그 애의 삶에도 든든한 친구들이 많길 바라는 마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