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인 줄 알고 표지를 넘겼으나 노트였다.
단순한 노트가 아니다. 여백이 많아 내용은 가볍지만, 절대 가볍지 않다.
빈 여백을 다 채우면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유일한 노트가 될 것이다.
해피 엔딩이라는 말보다는 해핑이라는 말이 어떨까 생각해봤다.
내가 이 노트에 남긴 글들이 끝이 아니길 바라기 때문이다.
생각과 말은 언젠가 잊혀진다.
하지만 글은 남는다.
솔직한 일기와 자신을 위한 위로와 신나게 놀다 떠날 이 별에 내 발자취를 남겨보자.
총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장 이름이 문장부호이다.
편집자의 아이디어가 참신하다.
1장은 따옴표. 자기 자신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라는 뜻일 것이다.
2장은 쉼표. 지금 나에 대해 모든 걸 적는다. 시시콜콜한 것 다 좋다.
3장은 느낌표. 중요하다. 추억과 상처를 다 끄집어내야 하기에...
4장은 마침표. 순간 울컥했다.
아주 꼼꼼하게 적으라고 유도한다. 그렇다고 귀찮거나 화가 나지 않는다.
웃음이 나오는 빈칸이 있고, 눈물이 나오는 빈칸도 있다.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글을 쓰도록 잘 설득한다.
첫 장부터 막막하다.
과연 나는 누구일까?
좌측 따옴표가 있는 배경패턴처럼 어지럽다.
하지만 막상 한 장을 넘기면 술술 풀린다.
어렵지 않다. 질문이 유쾌하고 재미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빈칸을 다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쓰는 동안 상상하게 될 거에요."
노트 중간에 친구의 이름과 소식이 끊긴 친구를 작성할 여백이 나온다.
마음이 아프고 답답했다.
반 백년 살았지만 술술 쉽게 쓸 줄 알았던 빈칸이 너무 커 보였다.
소식이 끊긴 친구는 많은데 지금 작성할 내 친구의 이름이 기억나질 않는다.
첫 번째 칸에 쓴 친구는 사실 형이다.
일주일 전 세상을 떠났다.
많이 좋아하고, 존경하고, 요즘 말 많은 블랙리스트에 첫번째로 기록될만한 진정한 아티스트였다.
친구 같았던 형이 오랜 투병 끝에 먼저 갔다.
형이 남긴 건 블로그에 있는 사진과 약간의 글들이 전부다. 아... 작곡한 곡도 있다.
이 노트가 좀 더 일찍 출간되었다면 형한테 선물했을텐데 아쉽다.
장례식장에서 술 퍼마시고 있는데 옆 빈소에서 앙칼진 목소리와 그릇 깨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쉽게 싸움이 끝나질 않는다.
난장판이다.
만약 고인의 영정사진 아래 고인이 쓴 이 노트가 있었다면 저렇게 싸웠을까.
오히려 이 노트를 돌려 보며 웃음꽃이 피어나지 않았을까.
어떤 작가는 죽을 때 친한 지인들 초청해서 시끌벅적하게 잔치를 하고 웃으며 죽고 싶다고 했다.
이 노트에 바로 그 초대장이 있다.
누구를 초대할까...
내 장례식에 많은 친구들을 초대하도록 애(愛)써야겠다.
해피 엔딩 노트...
매년 개정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세월이 흐를수록 좀 더 재미있고 신나고 슬픈 일들이 벌어질 것이고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을 쓰라고 꼬셔주시라.
정말 웃픈 노트다.
자신의 역사를 기억과 말로만 허비하지 말고, 이 노트에 차곡차곡 남겨보는 건 어떨까요? 자! 유언장 쓰실 준비 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