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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dy Grey
  • 비밀 The Top Secret season 0 시즌 ...
  • 시미즈 레이코
  • 6,300원 (10%↓350)
  • 2016-04-25
  • : 1,248

 

 

청렴결백하고 정의로운 미국 대통령이 휴가지에서 칼에 찔린 채 발견되었다! 대통령의 죽음은 우발적 사고일까? 아니면 계획된 암살일까? 암살이라면 과연 누가 어떤 목적으로 그를 살해했을까? 죽은 자는 침묵하고, 목격자는 없다. 사건의 진실을 알고 있는 건, 오직 대통령의 ‘뇌’뿐이다!

 

시미즈 레이코의 1999년 작 ‘비밀’은 2055년을 배경으로 죽은 이의 뇌를 MRI 스캐너를 이용해 영상으로 재현하여 대통령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혀내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달의 아이》《월광천녀》로 유명한 이 만화가는 자신의 강점인 SF, 단편, 짜임새 있는 스토리, 미려한 그림체를 충분히 활용하여 단편으로서는 가히 완벽에 가까운 수작을 그려냈다.

피해자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본 영상을 통해 사건을 해결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에 놀라고, 과학 기술의 진보와 우리 머릿속 뇌가 가진 힘에 압도당하며, 만일 내가 죽게 된다면― 그래서 내가 살아생전 보았던 장면들이 다른 이에게 공개된다면― 하는 생각에 몸서리치게 되는 ‘비밀’. 현대의 영화나 드라마에 비교해 보더라도 전혀 손색없는 이 작품은 발표 당시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2001년, ‘비밀’이 다시 돌아왔다. 미 대통령 암살 사건으로부터 5년 후, 일본의 과학 경찰 연구소 ‘법의 제9연구실’에서 마키 경시정과 신입 아오키가 미궁에 빠진 범죄를 수사하는 이야기가 옴니버스 식으로 펼쳐진다.

그러나 특수 흉악 범죄를 다룬 탓에 초반 1, 2권부터 잔인한 묘사가 이어졌기 때문일까? 아니면 매 사건마다 적나라하게 그려지는 인간의 이기심과 추악한 본성이 마음 한구석을 불편하게 했던 까닭일까. 대중적으로 사랑받았던 전작들과 달리 진입 장벽이 높다는 아쉬움을 남기며 한국에서는 마니아층에게 열렬한 지지를 받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또 전작 《월광천녀》에서도 지적되었던 바와 같이 이야기가 길어질수록 산으로 가는 전개, 절정에 치달으며 극대화된 긴장감에 비해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다소 맥빠지게 마무리된 결말, 궁금증을 증폭시키고서는 미처 회수 못한 복선, 뒤늦게 무리하게 집어넣은 설정으로 인해 초반과 모순되는 인물 관계 등은 단편에 강한 시미즈 레이코의 장점이 장편 연재로 이어지며 단점이 된 바, 작가가 반드시 뛰어넘어야 할 산일 것이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피에르 레비 수쌍은 《비밀의 심리학》에서 “환상은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하고, 비밀은 그러한 환상을 보호해준다. 비밀을 밝히면 우리는 환상을 잃게 되고, 현실에 내재한 폭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통령의 삶이 송두리째 빼앗긴 순간이 괴한의 칼에 찔렸을 때가 아니라, 그가 목숨과 맞바꾸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그 비밀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되어 처참히 짓밟혔을 때였던 것처럼.

인간은 비밀이 있어 존재한다. 그러나 비밀이란 판도라의 상자처럼 ‘아름다운 재앙’이기도 하다. 죽음으로 비밀을 지키려는 자와 죽음 너머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비밀 속에 감춰진 가공할 만한 진실들이 슬프고 안타깝게 그려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어쩌면 비밀은 비밀인 채로 묻어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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