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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트의 서재
  • 나무가 된 아이
  • 남유하
  • 9,900원 (10%550)
  • 2021-02-26
  • : 1,221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온쪽이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알고 있는 올바름은, 과연 정답일까?

살아가는 환경이 말해주는 정답에 맞추기 위해 변해가는, 혹은 강제로라도 변하려는 우리.

[반쪽이 설화]가 모티브인 듯한 [온쪽이]는 반쪽이 설화의 반쪽이가 겉모습은 반쪽이나 초인적인 힘과 재능이 넘치는 가장 완벽한 인물이었던 것처럼, 사회가 강요하는 정답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정답을 찾고 자아를 찾는 이야기다. 결국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것은 주변의 시선이 아닌 나 자신. 여러 방면에서 비유할 수 있겠다. 아이들이 편일 적인 강압적인 교육만 강요당하고 그것이 정답이라 생각하고 따르는 순간, 아이만이 가진 재능은 숨어버리는 것이다.

마지막에 깨달은 수호가 두 발로 힘껏 뛰는 삽화가 인상적이었다.

 

나무가 된 아이

 

필순이는 어느 순간 나무가 된다. 어른들은 모르고 아이들만 안다. 필순이 말고도 전에 무당벌레로 변한 현오라는 아이의 예를 들며 필순이를 괴롭히던 준서는 어차피 어른들은 모르니 신경 쓸 일이 아니라 치부한다. 모두가 방관하는 가운데, 단 한 명, 나는 나무가 된 아이를 계속 신경 쓴다.

학교폭력에 대한 우울한 풍자라 할까.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에 대한 동화. 다른 무언가로 변하는 것은 피해자들이고, 그것은 현실도피의 비유라 보았다. 그렇지만 어른들은 모른다. 도와줄 이들은 같은 아이들뿐이다. 하지만 모두는 자신도 피해를 볼까 방관자의 태도를 보인다.

나 역시 필순이와 절친이거나 한 건 아니다. 역시 지켜보기만 하던 방관자 중 하나였던 나는, 필순이가 나무가 돼서부터 관심을 주기 시작한다. 결국 방관자의 처지에서 벗어나 필순이의 친구가 된 순간(마지막 장면은 건조한 묘사임에도 매우 애잔했다.), 그리고 나무가 된 아이는 작중 단 한 번의 대사를 던진다. 고마워.

 

뇌 엄마

 

교통사고를 당한 엄마는 뇌만 살려내는 기술인 이터널 브레인의 치료를 받아 오직 뇌로만 존재하게 된다. 처음에는 그 모습에 거북해하고 어색해하던 나는 우연히 여러 빛을 내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 뭔가를 느끼고, 다시 예전의 엄마로 대하게 된다. 하지만 아빠와 엄마의 다툼을 듣고, 다시 자신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다.

남유하 작가님의 전공인 sf 장르 분위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었다. 어떻게든 뇌라도 남겨 끝까지 헤어지지 않으려는 아빠, 그리고 뇌만 남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엄마. 이 둘의 감정은 작중에서 나를 통해 모두 보이는데, 내가 엄마를 피하는 초반 분위기는 사라지고 싶어 하는 엄마의 심정을, 엄마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아 투정을 부리는 후반 분위기는 아빠의 심정을 보여준다. 결국 내가 깨달은 것은 아름다운 이별이며, 그것이 모두가 바라는 행복한 결말이 될 수 있다는 것. 삽화가 너무 좋았다. 내가 엄마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장면은 나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히게 했다.

 

착한 마녀의 딸

 

너무 슬프다. 작품집 중 가장 판타지 동화 같은 작품이나, 날이 선 풍자는 역시 피해갈 수 없다. 착한 마녀인 엄마와 함께 사는 바이올렛이 친구들을 만들기 위해 그들을 위한 마법을 부려보지만, 돌아온 것은 비참한 결말이었다.

[나무가 된 아이]와도 연관이 있어 보였다. 필순이는 단 하나라도 이해해주는 친구를 찾았으나, 바이올렛은 그렇지 못했다. 가장 화가 나고 슬픈 작품이었다. 바이올렛은 여전하나, 그녀를 대하는 이들끼리 서로 오해와 오해가 쌓여 진실을 만들고, 판단한다. 무서운 점은, 아이들 역시 누군가가 내린 정답을 자신들의 상황에 맞추어 올바른 일인 마냥 마녀사냥을 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들 역시 모두 몰살될 터다. 착한 마녀인 엄마는 그렇게 나쁜 마녀가 될 테고.

 

구멍 난 아빠

 

상실감에 대한 가장 큰 풍자. 누구나 어디 한 구석에는 구멍을 지닐 테다. 지금은 없어도,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구멍이다.

 

웃는 가면

 

[왕따를 시켰던 건 아니고 말 그대로 미유에게 자기영역을 준 거야] 이 문장부터가 복선이다.

제목 그대로 웃는 가면의 존재와, 그 가면에 실린 불가사의한 힘에 대한 우화. 모두가 거부할 수 없는 미소를 미유는 거부했고, 나는 받아들였다.

아마도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이미 사회생활은 시작될 터다. 아이들은 10살이 되기도 전에 이미 강자와 약자, 즉 인기 만점의 아이, 인기가 없는 아이를 구분하게 되고 그들을 반면교사 삼아 자신의 모습을 변화하고자 노력한다. 그렇게 서서히 모두는 다들 좋아할 만한 웃는 가면을 만들어 쓰게 된다. 그러나 미유는 절대 굴하지 않는다. 자신만의 오롯한 길을 간다. 모두의 웃는 가면 속 얼굴은 울고 있으나, 미유는 가면 자체를 쓰지 않으니 무표정이다. 그것은 나조차 가면을 쓰게 된 후에도 여전하다.

작품집중에 가장 어두운 색깔. 남유하 작가님이 호러 소설도 쓰신다고 들었는데, 역시 전반적으로 꿉꿉한 분위기와 압박이 대단했다.

 

작가의 말 중에 [저처럼 이방인이라는 말의 뜻도 모른 채 이방인의 맘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소곤소곤 위로의 말을 전할 수 있었다면 좋겠습니다]가 감명 깊었다. 작품집 전반적으로 약간 어두운 색깔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위 작가의 말로 대변된다. 왕따, 상실, 자존감, 오해, 눈치 등 태반은 나를 숨기고 모두에게 맞춰나가는 억압 된 삶을 풍자하는 이야기들인데, 그것이 내가 잘못된 것이라는 뒤틀린 생각이 심어지며 진짜 ‘내가’ 숨어버리는 암울한 일이 되면 안 된다는 것을 나무가 된 아이는 보여주고 있다. 어린아이들도, 나이 먹은 아이들도, 그리고 어른이들도 모두 생각을 곱씹을만한 훌륭한 동화집이다.


삽화를 빼놓을 수 없다. 작품 하나하나마다 정말 그 작품의 분위기를 너무 잘 살리는 삽화에 몰입이 배가 되었다. 작품을 깊게 살피고 고심해 만든 게 보인다. 좋은 작품을 써주신 남유하 작가님도, 너무 멋진 삽화를 그려주신 황수빈 작가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좋은 작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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