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마을에서 자란 나는 눈에 묻힌 풍경에 대한 아련 기억이 많다.
밤새 내린 눈이 온 세상을 하얗게 덮었던 어느 날의 아침..
순백의 땅과 그 위로 펼쳐진 파란 하늘 사이에 홀로 서 있던 순간..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나무 가지가 '탁' 소리를 내며 부러질 때의 메아리..
..모두가 눈에 대한 순정의 기억들이다.
나는 늘 이 순정의 기억들을 언어나 그림을 통해 표현된 것들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그래서 야스나리의 '설국'을 처음 읽을 때 얼마나 기대에 차있었던가!
그러나 나는 설국에서 그 갈증을 채우지 못했었다.
번역의 문제일까.. 잘 모르겠다.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순정의 기억들은 나에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책 속에서 펼쳐지는 풍경들은 그대로 나의 유년시절의 풍경인 듯 나의 기억들과 하나가 되었고, 책속의 인물들이 풍경 속에서 느끼는 느낌들은 그대로 나의 옛 느낌과 하나가 되었다.
주호와 연희를 통해서 전해오는 순정의 시간들은 알수 없는 사랑에 대한 그리움으로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비로서 나는 눈에 대한 순정의 기억.. 그에 대한 갈증을 해소 할 수 있었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설국과 이 책이 내게 주는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작가가 뿌리내렸던 토양이.. 그리고 그 위에 쌓였던 눈들이.. 내가 뿌리내려 자라온 토양이요 내가 맞았던 눈들이라는 사실이 가장 큰 이유인 것만은 확실하다.
나의 눈에 대한 순정의 기억.. 그 갈증을 채워준 작가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