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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극
  • 테리 이글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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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1-30
  • : 1,583
테리 이글턴, 『비극』(을유문화사)(2023)

<비극적인 삶과 거짓말의 존중>
* 비극의 죽음
조지 스타이너는 『비극의 죽음』에서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진정한 비극적인 정신은 근대적인 것의 탄생과 함께 소멸했다고 본다. 이글턴은 스타이너와 같이 비극의 죽음을 선언한 이들에게 단순히 비극은 죽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다면 비극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스타이너의 비극은 엘리트주의적이고, 영적이고, 절대적이고, 돌이킬 수 없고, 보편적이고, 운명의 문제다. 하지만 이글턴은 이런 정의가 “꽁꽁 싸인 채 고통으로부터 격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한다. 또 그는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와 부조리를 비극으로 보는 듯하다.
* 부조리의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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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매케이브가 근친상간에 내포된 “정체성의 상실 또는 불확실성”과 관련하여 말하듯이 “전통적인 친족 어휘의 혼란은 바벨로의 퇴행, 이해할 수 있는 가치들의 혼란을 수반한다.” 롤랑 바르트는 근친상간을 “어휘의 놀라움”이라고 묘사하는데, 이는 근대의 고전적인 절제된 표현 가운데 하나로 꼽을 만하다. (중략) 이런 의미에서 오이디푸스와 스핑크스는 서로 적대자일 뿐 아니라 거울 이미지기도 하다._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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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그 부조리란 무엇일까? 『오이디푸스』의 근친상간(아들이자 남편, 어머니이자 아내)과 산술(세 갈림길에서 라이오스를 살해한 이는 몇 명인가)의 문제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에 둘이 들어가 있는 문제”다. 또 “인간 행동의 원천은 다양하고 모호하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은 어디까지이며, 우리의 고통은 어떻게 파생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비극은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멀게 한다.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그는 “더 큰 존재가 되는 데 성공한다.”
* 스핑크스와 오이디푸스, 비극과 관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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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기반 없는 인간 실존의 본질이 자기 자신과 대면할 수 있는 장소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은 자신이 놓인 세계―자기 발 밑에 굳은 땅이 있다고 가정하는 세계―보다 더, 또 동시에 덜 현실적이다._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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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은 결국 허구의 이야기일 텐데, 우리가 사는 세계 또한 진실한 것은 아니다. “연극은”, 테리 이글턴은 말한다(이 책의 인용문은 꼭 이렇게 끊긴다), “환각 제곱”으로서 “허위의식”의 “본질에 관해 사유할 수 있다.” “환상은 현실의 대안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생각하는 틀 자체다.”
나는 앞서 언급된 『오이디푸스』의 스핑크스를 마주한 오이디푸스를 떠올렸다. 스핑크스는 인간의 머리를 했지만 여러 동물을 합쳐놓은 듯한 기괴한 모습이다. 인간을 닮았지만 괴물인 스핑크스를 마주한 오이디푸스가, 인간의 삶을 닮았지만 허구인 비극을 보는 관객의 모습과도 같다고 생각했다. 관객은 비극의 수수께끼에서 현실의 수수께끼를 발견하는 것일까?
* 비극의 존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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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경우 모두 고난과 영웅적 저항을 통해서만 어떤 인정사정 봐주지 않는 힘들의 물러서지 않는 현존을 느끼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 그것과 정신적으로 동등하거나 심지어 우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의미에서, 예술 작품의 형식적 구조에서도 그렇듯이, 속박이나 필연은 자유의 근거이지 그 반대가 아니다._p.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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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리 이글턴은 비극을 통해 인간이 부조리에 뛰어드는 것에서 자유를 느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카뮈와 여러 작가가 생각난다) 모든 인간은 부조리를 겪으며 살 수밖에 없는데, 그는 기존의 논의가 비극의 범위와 다양성을 축소해 “위로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마땅히 그래야 할 만큼 존중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이글턴이 그렇게 비극의 죽음을 부정하고 비극에 관한 논의를 재정립한 이유가 결국 고통받는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고통이 위로 불가능한 것일지라도 비극은 고통받는 인간을 존중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비극이 굉장히 현실적인 (아폴론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문학이라고 느꼈다. 부조리에 맞선 체념을 인정하고도 존중하는 문학.
비극이 읽고 싶다고, 늦게나마 생각했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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